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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생각하고11

<이상 소설 전집>_이상 을 읽고 이상 소설 전집(세계문학전집 300) 한국 문단의 천재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상이 남긴 모든 소설을 수록한 작품집 『이상 소설 전집』. 오늘의 독자들을 위해 엄선하여 번역한 문학 고전을 선보이는 「세계문학전집」의 300번째 책이다. 원로 국문학자 권영민 교수가 당시 문학잡지에 수록된 이상의 작품 원전을 한 자 한 자 대조하고, 이상만의 독특한 서술법을 살리되 요즘 독자들이 읽기에도 무리가 없도록 편집했다. 그 실험성과 전위성으로 인해 오늘날까지 다양한 비평 담론과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이상의 소설은 13편에 지나지 않는다. 이상은 사회 존재 기반이나 삶의 배경 없이 추상적으로만 존재하는 인물들을 통해 뿌리 뽑힌 도시인과 소외된 지식인의 억압된 충동, 감추어진 욕구를 폭로하며 그들의 무의식을 드러냈다. 그의 .. 2022. 9. 23.
<숨그네>_헤르타 뮐러 를 읽고 숨그네(세계문학전집 31) 헤르타 뮐러의 를 읽으며 주제로 제시해주신 ‘극한의 시(時), 극한의 시(詩)’라는 표현이 끊임없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보다 더 절묘한 표현이 있을까. 신형철 평론가가 ‘시의 옷을 입은 비극’이라고 평한 것처럼 이 책은 소설이지만 극한의 시(時)를 노래한 극한의 시(詩)라고 해도 무방하리라 생각한다. 이 책은 완독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분명 인물, 배경, 사건이 존재하는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반복되는 배고픔, 추위, 노동, 피곤함, 권태, 향수, 이, 빈대, 죽음의 변주 속에서 책장이 지지부진하게 넘어갔다. 마치 간접적으로나마 17살 소년 레오가 겪은 5년간의 수용소 생활을 느껴보라고 하는 듯이 독자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기분이었다. 이 책과 함께 이라는 와 비슷한 시기의.. 2022. 9. 2.
<양의 미래>_황정은 를 읽고. 태양의 미래 아무도 아닌 황정은의 세 번째 소설집 『아무도 아닌』. 《파씨의 입문》이후 4년여 만에 펴내는 소설집으로, 2012년 봄부터 2015년 가을까지 발표한 여덟 편의 단편소설을 묶었다. 2014년 이효석문학상 수상작 《누가》, 2014년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작 《상류엔 맹금류》, 2013년 젊은작가상 수상작 《上行》이 수록되어 있다. 어쩔 수 없는 이 세계의 시민이자 작가로서 황정은이 그 시간을 정직하게 통과해오면서 놓지 않았던 고민의 흔적과 결과들을 특유의 낭비 없이 정확하고 새긴 듯 단정한 문장들로 담아냈다. 이 책에 담긴 여덟 편의 작품을 한데 모아 읽는 일은 단순히 훌륭한 예술작품을 경험하는 것을 넘어, 지금 이 순간 바로 인간이라는 삶의 자리에 독자인 자신을 다시금 위치시키는 일이 될 .. 2022. 8. 30.
이 시국 독서, 알베르 카뮈<페스트> 알베르 카뮈의 역작 를 읽어야지 생각은 했는데 늘 우선순위에서 밀리다가 요즘 같은 시기에 읽으면 왠지 더 몰입해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책을 꺼내 들었다. 책을 읽기 전에 나는 막연히 이 소설이 주제 사라마구의 와 같은 느낌일 거라고 예상했다. 가 ‘실명’이라는 전염병의 유행, 그로 인해 격리된 사람들, 그들을 억압하는 폭력, 눈먼 자들 사이의 끔찍한 범죄 등을 다뤘던 것처럼 도 ‘페스트의 창궐’이라는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인간들의 추한 본성에 관한 탐구가 아닐까 싶었다. 그렇지만 카뮈의 는 그 결이 좀 달랐다. 서술자의 감정보다 사건이 일어난 상황을 위주로 전달하는 건조한 문체 때문인지 기대했던(?) 폭력적인 상황이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추악한 인간들의 혼란은 잘 드러나지.. 2020. 3. 9.
뜨거운 여성 연대의 이야기 -<체공녀 강주룡>을 읽고 강주룡, 그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엔 한 번도 그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강주룡은 일제 강점기 여성 노동자이자 노동 운동가이며 한국 노동운동 역사상 최초의 여성 고공 농성자라고 한다. 역사교육에서 모든 역사를 다룰 수는 없으니 그중 주목받는 역사와 주목받지 못해 잊힌 역사가 있다면, 일제 강점기의 노동운동 역사와 그와 더불어 여성 노동가 강주룡의 역사는 주목받지 못한 쪽이다. 이 책은 이렇게 잊혀가는 역사를 기반으로 서술된 소설이다. 일제 강점기를 살아간 사람들이라고 하면 일제의 모진 핍박 속에 고통받는 평범한 조선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러나 이는 어쩌면 남성에게만 해당하는 얼굴일 것이다. 이 소설의 이야기를 따르면 이 시대의 여성들은 일제의 핍박과 동시에 심.. 2020. 2. 11.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것 이번 주 글감인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것’을 봤을 때 처음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쓸쓸하게 터만 남아 있는 옛 유적지들의 모습이었다. 특히 어릴 적에 경주 황룡사지에 방문했을 때가 생각났다. 경주 최대의 사찰로 불국사의 8배 규모였다는, 9층 목탑이 있었다는 그곳엔 정말 터와 당시의 규모를 짐작하게 해주는 주춧돌만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이었다. 안 그래도 유적지니 박물관이니 재미도 없을 나이였는데 애써 찾아간 곳에서 멍하게 너른 땅만 바라봤을 때 느낀 허무함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가만히 앉아 또 어떤 것들이 사라지고 없는 걸까 생각해보았다. 여러 생각에 잠겨 창문으로 바깥을 바라보았는데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 나무를 흔든 바람들도 모두 나무를 지나친 뒤 사라지고 없어진 .. 2020. 1.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