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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생각하고

이 시국 독서, 알베르 카뮈<페스트>

by 썸머Summer 2020. 3. 9.

 

알베르 카뮈의 역작 <페스트>를 읽어야지 생각은 했는데 늘 우선순위에서 밀리다가 요즘 같은 시기에 읽으면 왠지 더 몰입해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책을 꺼내 들었다.

책을 읽기 전에 나는 막연히 이 소설이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와 같은 느낌일 거라고 예상했다. <눈먼 자들의 도시>가 ‘실명’이라는 전염병의 유행, 그로 인해 격리된 사람들, 그들을 억압하는 폭력, 눈먼 자들 사이의 끔찍한 범죄 등을 다뤘던 것처럼 <페스트>도 ‘페스트의 창궐’이라는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인간들의 추한 본성에 관한 탐구가 아닐까 싶었다.

그렇지만 카뮈의 <페스트>는 그 결이 좀 달랐다. 서술자의 감정보다 사건이 일어난 상황을 위주로 전달하는 건조한 문체 때문인지 기대했던(?) 폭력적인 상황이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추악한 인간들의 혼란은 잘 드러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카뮈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오히려 ‘페스트’라는, 개인의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불행이라면 불행, 고통이라면 고통, 악이라면 악 그 자체가 두드러지게 느껴졌다. 죄 없는 어린 소녀까지 고통에 몸부림치다 죽게 만드는, 도저히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한’ 그 상황 자체가 나를 압도하는 느낌이었다. 다른 시기에 이 책을 읽었다면 소설 속 상황을 은유적으로 인지했을 텐데, 지금 이 시기에 읽으니 문자 그대로의 ‘페스트’가 평범했던 한 도시를 지배해감에 따라 내 숨통을 서서히 조여오는 것 같았다. 

특히 내게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페스트로 인한 무시무시한 죽음보다 그 죽음에 서서히 잠식되는 일상의 풍경이었다. 해안 도시 오랑에도 작년과 같은 여름이 돌아왔지만, 그 여름은 작년과 같을 수 없었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3월도 지금까지 잘 의식하진 못했지만 매년 비슷했던 것 같다. 지금쯤 새 학기의 기대감과 바쁨에 관해 이야기하고, 성큼성큼 다가오는 봄 날씨와 반갑지 않은 손님인 황사와 미세먼지 등에 대해 떠들어야 하는데 그런 이야기들이 전부 사라져버렸다. 

그동안 내가 믿어오고 단단히 여겼던 나의 일상과 삶이 바이러스처럼 보이지도 않는 것들에 의해 이토록 쉽게 허물어질 수 있다는 것을 느끼니 끝없는 무력감이 밀려 왔다.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페스트는 점점 사라져가고 시민들의 마음에도 그리고 책을 읽고 있는 나의 마음에도 희망이 깃들기 시작하지만 바로 그 순간 지금까지 페스트와 용감하게 맞서 싸웠던 타루는 죽는다. ‘페스트’로 대표되는 부조리는 이처럼 의도도 목표도 알 수 없고 시작과 끝도 알 수 없다.

그렇기에 기자 랑베르의 도시 탈출이 불가능했듯 회피도 불가능하고 신부 파늘루처럼 이 상황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려는 작업 또한 무의미했다. 오직 리외, 타루, 그랑처럼 한 명의 환자라도 더 살리려는 선의를 가지고 연대할 수밖에 없다. 성실하게 세계와 투쟁할 수밖에 없다. 끝없이 반항할 수밖에 없다. 오직 그곳에 인간성이 있고 희망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연대기가 결정적인 승리의 기록일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이 기록은 성자가 될 수도 없고 재앙을 받아들일 수도 없기에 의사가 되려고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개인적인 고통에도 불구하고 공포와 그 공포의 지칠 줄 모르는 무기에 대항해 완수해야만 했고 아마도 여전히 완수해야 할 그 무엇에 대한 증언에 불과했다.”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주기 위해 페스트가 쥐들을 다시 깨우고 그 쥐들을 어느 행복한 도시로 보내 죽게 할 날이 오리라는 사실도 그는 알고 있었다.” 



카뮈의 ‘페스트’가 전염병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지만 카뮈가 예상한 대로 소설 속 페스트를 현실에서 목도하는 요즘이다. 오랑 시처럼 중국의 우한도 봉쇄되었고 이탈리아 북부 지역도 곧 봉쇄된다는 뉴스를 보았다. 공포가 한 도시를 넘어 전 세계를 조금씩 잡아먹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그렇기에 어느 때보다 더 카뮈가 제시한 인간의 길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책장을 덮으며 내게 그 길을 받아들일 용기가 있는지 자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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