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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밤의 꿈같은

한국에 돌아온 지 첫째 날

by 썸머Summer 2020. 3. 30.

비교적 편하게 입국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영국 집에서 한국 집까지는 꼬박 하루 정도가 걸려서 그런지 아님 한국에 돌아왔다는 안심 때문인지 최근에 꿈(주로 악몽)을 안 꾼 날이 거의 없었는데, 어제는 꿈도 꾸지 않고 푹 잤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니 컨디션이 그리 좋지 않았다. 속도 좀 메스껍고 두통도 있는 것 같고. 조심한다고 했는데도 혹시 싶은 불안감 때문에 덜컥 겁이 났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증상 중에 두통이나 메스꺼움도 있나 싶어 찾아보기도 하고 체온계로 열도 바로 체크했다. 다행히 열은 없었고, 다행히 수면안대를 끼고 오전에 또 한숨 푹 잤더니 머리가 개운해지는 게 시차적응 때문이었나 싶다.

자고 있는데 보건소에서 전화가 왔다. 어제 입국하면서 3일 이내에 보건소로부터 연락이 갈 거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하루 만에 이렇게 바로 연락이 오다니. 심지어 당장 오늘 검사를 받으러 보건소에 오라고 하셨다. 영국에 있을 때는 증상이 있어도 일단은 병원에 오지 말고 집에 1주일은 있으라는 식이라 얼마나 마음이 조마조마했는데, 한국에서는 증상이 없어도 해외에서 입국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빨리, 그것도 무료로 검사를 받을 수 있다니. 진짜 이런 시스템을 돌리기 위해 불철주야 고생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현재 자차가 없고, 면허는 있지만 영국에 가 있는 동안 운전대를 손에서 놓아서 보건소까지 혼자 차를 몰고 가기가 걱정된다고 말씀드리니 직원 분께서 직접 데리러 오신대서 너무 죄송했다. 

집 앞에 나갔더니 구급차 한 대가 와 있었다. 생전 처음으로 타는 구급차라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와중에 어제는 저녁 늦게 도착해서 보지 못했던 길가의 벚꽃들이 정말 예뻤다. 따사로운 봄 햇살과 여린 분홍빛의 벚꽃, 그리고 새순이 돋기 시작한 저 먼 능선의 산까지. 새삼 한국의 풍경은 참 부드러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이 이렇게나 많은데도 거칠고 험준한 느낌보다는 도시와 잘 어우러지는 유순하고 부드러운 인상이 새롭게 느껴졌다. 

보건소에 갔더니 정말 기사에서 접한 것처럼 검역 복장을 한 의료진들이 있었고 아마 나처럼 누가 검사하고 다녀간 건지 꼼꼼히 방역을 하고 있었다. 입과 코에 긴 면봉을 집어넣는데, 듣던 대로 코에는 꽤 깊숙이 면봉이 들어가서 눈물이 찔끔 났다. 이렇게 간단한 검사 과정을 거치면 하루나 이틀 있다가 내 연락처로 결과를 개별 통보해준다고 한다. 재차 얘기하지만 이렇게 간단하고 편리하게 검사가 진행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했고, 또 하고 있는지가 절실히 느껴졌다. 

이렇게 오래 한국을 떠난 적이 없어서 돌아오면 왠지 골목의 풍경들과 낯을 가릴 것 같았는데 오래된 친구는 아무리 오랜만에 만나도 엊그제 만난 것 같듯이 골목길은 마치 어제도 이곳을 거닐었던 것 같이 익숙하고 편하게 느껴졌다. 영국의 거리를 거닐 때는 음식점 간판을 보며 별 감흥이 없었는데 여기선 차를 타고 지나가며 음식점의 간판만 봐도 왜 이렇게 다 맛있게 보이는지. 낙지볶음, 갈비탕, 회 센터.. 일부 해외 입국 확진자의 동선을 보면 가끔 선별 진료소를 다녀오고 아직 검사 결과도 안 나왔는데 식당에 들른 기록이 있던데 그들의 행동은 정말 이기적이고 무책임하다고 생각하지만 음식점의 간판들을 보니 왜 그들이 그렇게 행동했을지 조금은 짐작이 갔다. 

 

 

집에 도착했더니, 오늘 오전에 주문했던 책이 벌써 와 있었다. 안 그래도 어제 인터넷을 하는데 속도가 너무 빨라서 내 핸드폰이 이렇게 성능이 좋았다니! 하고 감탄을 했는데 책 배송까지 이렇게 빠를 일이냐고요. 엄마는 나를 위해 식판에 밥을 따로 준비해서 방문 앞에 가져다주시고, 그냥 세상 모두가 나를 위해 최고급 서비스를 해주는 느낌이 들어서 얼떨떨한 기분까지 든다. 그렇지만 평소에 잘 못 느껴서 그렇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살아가는가. 한편 내가 누리는 편리함이 누군가의 노고와 고통을 양분으로 피어나지 않았나 하는 마음도 들고 나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았는지도 반추하게 된다. 학교 도덕 시간에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배웠지 절실히 생각해보지 않았던 공동체의 삶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하게 되는 시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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