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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밤의 꿈같은

일상 ; 日常

by 썸머Summer 2020. 3. 27.

일상[日常] :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

 

자주 ‘일상’이라는 단어를 내뱉고 살았지만 ‘일상’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본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일상’은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었구나. 이런 반복적 특징 때문에 우리는 흔히 일상을 쳇바퀴에 비유한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제자리만 빙글빙글 도는 쳇바퀴는 때론 너무 답답하고 그 생활 자체만으로도 힘에 부친다. 그래서 우리는 늘 일상 탈출을 꿈꾼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 하고 멀리 떠나지 못했을 때는 집이라는 일상 공간만이라도 벗어나고자 주말 동안 잠시 호캉스를 가기도 한다. 이것도 저것도 하지 못할 때는 일상 탈출, 즉 일탈을 상상만이라도 잠시 꿈꿔본다. 일전에 자우림도 노래 부르지 않았던가. “신도림역 안에서 스트립쇼를-”

그런 취급을 받던 일상이 지금은 너무 그립다. ‘소확행’이라는 말이 너무 이곳저곳에서 남발되어서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말이었는데, 일상이 사라지고 나니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 속에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이 분명 있었다는 것이 이제야 절절하게 느껴진다. 

오후에 가볍게 커피 한 잔을 하러 가던 스타벅스에 들어가는 것이 꺼려졌다. 그래서 한동안은 드라이브 스루를 이용했는데 이젠 그것마저 문을 닫아버렸다. 자주 방문했던 마트에 한 번 가기 위해 남편은 마스크를 쓰고 비닐장갑을 꼈다. 나는 그것조차 혹시 위험할까 싶어 주차해 놓은 차에 덩그러니 앉아있었다. 남편은 큰 마트 두 곳을 돌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려고 했던 물건을 다 사지 못하고 돌아왔다. 차에 돌아와서는 얼른 손 소독제로 손을 닦았다. 

차창 밖으로는 봄 햇살이 비치고 주차장 근처의 꽃나무에는 꽃이 피기 시작했다. 분명 작년과 다름없는 봄이 왔는데, 같은 봄이 아니었다. 풍경은 그대론데 너무나 달라진 분위기가 생경하다. 

게다가 요즘은 일상이 사라진 자리에 대신 혐오가 들어서는 것 같다. 첫째로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생명이 위협받는 데다가 이미 몇 달간 노이로제에 가까운 상태였기 때문에 사람들의 피로감과 예민함이 한계치에 다다른 것이 이해가 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타인에 대한 혐오 감정을 마음껏 쏟아내는 행동에 대한 변명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정말 너무나 많은 곳에서 선 긋기, 타자화하기, 혐오하기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서양인은 동양인에게 폭력적인 인종차별 행동을 서슴없이 하고, 한국에서는 외국인이나 해외 교민들에게 쓴소리를 퍼붓는다. 정부의 방침에 찬성하는 사람은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을 욕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확진자의 동선이 뜨면 하나하나 분석해 잘잘못을 가리고 단죄한다. 이렇게 흘러넘치는 혐오에 나는 질식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최근 내가 이토록 강하게 ‘결핍’ 혹은 ‘빼앗김’이라는 감정을 느꼈던 적이 있었나 싶다. 남편이 내게 한국에 돌아가서 자가격리도 다 끝나면 가장 가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물었는데, 정말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은 그냥 한국식 분위기 좋은 카페였다. 그냥 그런 카페에 책 한 권 들고 가 앉아서는 마음 놓고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싶다. 내겐 그냥 이런 게 일상이었고 그 일상의 다른 이름은 행복이었나보다. 다시 일상이 돌아온다면 그땐 더 소중히 대해줄 수 있을 텐데. 부디 얼른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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