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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___Diary

NIPT 검사받은 날

by 썸머Summer 2020. 1. 23.

아기가 11주에서 12주 차가 되었을 때, 기형아 검사를 해야 한다는 글을 읽었다. 한국에서는 1차 기형아 검사로 초음파를 통해 아이의 목둘레 등을 검사하고 이후 2차 기형아 검사로 혈액을 통한 트리플 테스트, 쿼드 테스트 등을 한다고 들었다. 이런 검사를 통해 다운증후군을 비롯한 유전적 기형의 위험을 알 수 있다고 한다. 혹시 트리플(쿼드)테스트에서 고위험군으로 결과가 나오면 양수를 가지고 검사를 해 더 정밀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보통 산모 대부분이 이러한 절차의 검사를 거치는 것 같았다. 나도 내가 만약 한국에 있었으면 다수가 하는 이 검사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곳은 영국. 무엇보다 병원 예약 날짜가 내 맘대로 잡히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립 병원에서 이 검사를 받는 것이 불안했다. 원래라면 12주에 병원에서 첫 초음파 스캔을 보는 건데 예약이 밀렸는지 병원 방문 날짜도 12주가 아니라 13주 차로 잡히다 보니 기형아 검사는 언제 하고, 또 그 결과를 바로 받아볼 수는 있는 건지 의심스러웠다. 

정말 아니길 바랐지만, 혹시나 만약에 혹시나 아기가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면 최대한 빨리 그 결과를 알고 후속 조치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우편으로 커뮤니케이션이 오가는 이곳에서 세월아 네월아 할 것을 생각하니 불안해서 도저히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인터넷을 검색하니 영국에 거주하고 있던 다른 임산부가 NIPT라는 검사를 받았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찾아보니 NIPT는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고위험 산모에게 권하는 기형아 검사로, 쿼드 테스트보다 정확해 2차 양수 검사까지 할 필요가 없어서 양수 검사로 발생할 수 있는 유산의 위험성이 낮은 검사였다. 이런 점도 좋지만, 무엇보다 내겐 NIPT가 사설 병원에서 시행하는 검사라 10주 이상만 되면 언제든지 검사를 받을 수 있다는 점과 최소 1주일에서 최대 10일 안에 검사 결과를 확실히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하지만 만약 일반 검사를 받는다면 전액 무료인데 NIPT는 사설 의료 기관을 이용하는 검사다 보니 60만 원 정도의 비용을 지급해야 했다. (가격은 찾아보니 미국에서 받으면 살짝 저렴한 것 같긴 했는데, 그 외의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는 비슷한 가격인 듯했다) 큰 지출이지만 일반 병원에서 검사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릴 동안 괜히 불안해하고 걱정하는 것이 아기한테는 훨씬 안 좋을 것 같아서 그냥 이 검사를 받기로 했다. 

절차는 정말 간단했다. 예약 후 방문, 그리고 혈액 뽑기. 얼마 전에 만난 midwife는 내 양팔을 다 찔러도 혈관을 못 찾던데 이분은 간단하게 한 번에 성공. 자본의 힘이 이렇게 무서웠던가. 원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7일에서 10일 정도 걸리지만, 내가 검사를 했을 때가 새해와 겹쳐서 12일~13일 정도가 걸릴 수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1주일 후. 병원에서 무심하게 문자가 왔다. 검사 결과가 나왔으니 전화를 하라고. 남편과 함께 검사 결과를 듣고 싶었지만, 남편이 하필 그때 운동하느라 체육관에 가 있어서 혼자 엄청나게 긴장한 채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거니 담당자가 내 개인정보를 확인하고 다행히 결과가 저위험군으로 나왔다고 알려주었다. 그동안 계속 혹시나 만에 하나 하는 마음에 걱정하고 있었는데 정말 정말 기뻤다. 

굉장히 재밌는 것은 이 검사를 하면 유전자 검사이기 때문에 당연히 아기의 성별이 바로 나온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성별에 따라 낙태를 하던 시절이 있어서 그런지 NIPT 검사를 받아도 성별을 따로 알려주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영국은 그렇지 않아서 성별도 바로 알려주었다. “It’s a little boy”라고 수화기 넘어서 알려주는데 진짜 그때의 감정은 뭐라고 설명하기가 어렵다. 

정신없이 전화를 끊고 나니 내가 지금 제대로 들은 것은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 다시 전화를 걸었다. 다시 한번 말해줄 수 없냐고 부탁하니 담당자가 웃으면서 같은 결과를 말해주고는 메일로 검사 결과를 보내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덧붙였다. 

저위험군이라는 결과가 나와서 정말 다행이야 :) 


그래서 12주 차에 난 우리 아기가 예쁜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딱히 아들이든 딸이든 크게 바라는 것은 없었고, 지금도 부디 건강한 아이가 태어나길 바랄 뿐이다. 그렇지만 내가 딸로 살아왔기 때문에 그냥 막연히 내가 딸이 있다면 우리 부모님이 나를 키워주신 방식 중 좋은 점은 살리고, 이렇게 해주셨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점은 딸에게 내가 직접 해줘야겠다고는 생각했었다. 그냥 내가 여자니까, 내가 딸이니까, 나를 이입해서 상상 정도만 해봤다. 그런데 아들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한 번도 내가 상상해보지 않은 모습이라 약간의 당황스러움과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스러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인생이란 언제나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 내게 선물 같은 Little boy가 와주었으니 이제부터 조금씩 만남을 준비하면 된다. 어떤 모습의 아이가 와줄지 하루하루 정말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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