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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___Diary

처음으로 midwife 만난 날

by 썸머Summer 2020. 1. 22.

영국은 임산부들이 산부인과 의사를 바로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midwife라는 조산사와의 만남을 통해 임신한 전 기간 관리를 받는다. 나도 몇월 며칠 몇 시까지 병원에 midwife를 만나러 오라는 편지를 받고(언제나 이 ‘편지’엔 적응이 안 되지만) 약속 시간에 맞춰 병원을 찾아갔다. 

그동안 사설 초음파 스캔을 통해 아가를 만나왔지만, 정식(?) 의료인과는 처음 만나는 거라 떨리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다. 편지에 소변을 지참하라고 적혀있어서 집에서부터 들고 가야 하는 건가 싶어 고민했지만 그래도 그건 좀 아닌 것 같아 마트에서 산 공병만 들고 갔다. 다행히 영국도 그렇게 비상식적이진 않은지(이자는 영국 의료체계에 대한 불신이 짙다) 전용 공병을 나눠주고 소변을 받아오라 해 midwife에게 그걸 건네주면서 면담이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midwife가 기본적으로 키, 몸무게, 혈압을 측정한 뒤 산모수첩을 나눠 줬다. 근데 원래는 컴퓨터가 작동되어서 내 이름, 주소, NHS 번호 등을 스티커로 인쇄해 겉표지에 붙여야 하는데 비가 와서 그런지 컴퓨터가 제대로 작동을 안 해서(라고 midwife가 말했다) 손글씨로 써주는데 내 맘속의 정식 의료기관에 대한 신뢰도가 빠르게 하락하기 시작했다.

그 뒤엔 midwife가 나의 지병이나 가족력에 대해 세세히 물었다. 하나하나 세세하게 체크해 주는 것이 좋긴 했지만,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언어의 벽. 

차라리 체크 리스트를 주고 나한테 체크를 하라고 시켰으면 혼자서 차분히 앉아서 사전을 찾아가며 체크 했을 텐데, 1:1로 앉아서 너 당뇨가 있니? 이런 식으로 그나마 알아들을 만한 병으로 시작해 특히 가족력을 조사할 때는 이제 gestational sac, subchorionic hematoma, pre-eclampsia, post-natal depression(각각 태낭, 융모혈종, 임신중독증, 산후우울증) 등의 생전 처음 듣는 영어 단어들을 내뱉으며 이런 증상 가족 중에 있던 사람 있니? 하고 물어보는데 굉장히 중요한 조사니까 대충 예스, 노 하고 넘어갈 부분도 아니라 하나하나 다시 물어보고 설명 들어도 모르겠으면 스펠링 확인해서 그 자리에서 사전을 찾아보고 하느라 면담이 엄청 길어지고 힘들었다. 

게다가 하이라이트는 내 혈액 검사. 
그동안 한국에서 수많은 건강검진을 해왔지만 단 한 분의 간호사 선생님도 내 혈관을 못 잡은 분이 없으셨는데 아무래도 동양인의 혈관은 서양인보다 체구만큼이나 가는 것일까. 왼팔에 두 번 주사 바늘을 찔러대며 시도해보더니 혈관이 너무 가늘어서 잘 안 잡힌다고 오른팔로 재시도. 그러나 오른팔도 주사 바늘로 푹푹 찌르기만 하고 혈액 채취에는 결국 실패. 혈액 검사도 못 했는데 바늘로 찔러대는 통에 팔만 욱신거리고 midwife는 미안해요~ 다음에 병원에 방문할 때(약 4주 뒤) 그때 오늘 혈액 검사를 못 했다고 얘기하세요~라며 그저 쿨 하게 마무리. 

이로써 4주 뒤에 병원에서 첫 초음파 검사와 혈액 검사를 다시 받기 전까지 정식 의료기관에 존재하는 내가 임신했다는 증거(?)는 오직 나의 주장과 그를 뒷받침할 소변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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