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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___Diary

입덧하는 이야기

by 썸머Summer 2020. 1. 18.

 

모든 사람은 어머니의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거쳐 태어났음에도 우린 생각보다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 대해 무지한 것 같다. 학교에서도 수정의 순간을 배우거나 유전학적인 측면의 감수분열에 대해 자세히 배웠으면 배웠지 임신과 출산의 전 과정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다루고 넘어갔던 것 같다. 임신과 출산을 겪을 가능성을 가진 여자로 살아온 나도 잘 알지 못했는데, 그 과정을 겪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남자들은 말해서 무엇하겠나. 

그래서 임신을 하고 난 뒤 내게 일어난 신체적 변화들은 모두 하나하나 내게 당혹감을 준다. 그중 첫 번째로 마주한 녀석이 바로 입덧이었다. ‘임신하면 입덧을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직장에서 입덧으로 고생하는 직원분들의 모습도 분명 봤지만, 그들이 정확히 어떻게 힘들어하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의사도 아닌데 아파하는 동료에게 굳이 어디가 얼마나 어떻게 아픈지 꼬치꼬치 캐묻지 않는 것처럼 그냥 많이 힘들겠다, 내가 일손을 좀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만 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내가 입덧에 대해 가지고 있던 지식은 미디어를 통해 접한 단편적인 이미지가 전부였다. 가족끼리 밥을 먹다가 혹은 도란도란 얘기하다가 갑자기 욱하는 소리와 함께 입을 막고 화장실로 달려가 헛구역질을 하는 것만이 입덧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나의 대단한 착각이었다. 나는 입덧은 가끔 특정한 냄새나 자극에만 반응해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하루 24시간 쉴 틈 없이 뱃멀미에 시달리는 기분이었다. 술을 엄청 마신 뒤 숙취에 시달리는데 그게 24시간, 매일, 몇 주 연속으로 진행되는 것이 입덧이었다. 어지럽고 울렁거리고 속이 느글거려 당장이라도 구토를 할 것 같아서 앉을 수도, 설 수도 없었다. 음식을 먹지 않았는데도 입이 썼다. 아무리 물을 마셔도 특유의 불쾌한 맛은 그대로였다. 사실 생수조차 마시기 어려웠다. 물에서도 비린 맛이 느껴졌다. 종일 아무것도 못 먹어서 정말 배가 고픈데도 음식을 먹으려고 하면 식도가 자동으로 닫힌 느낌이었다. 

사람마다 입덧이 심한 시간이 다르던데 나는 오전보다 오히려 잠들 때쯤이 가장 고역이었다. 잠이라도 자야 시간이 빠르게 흘러갈 텐데 멀미가 심하면 잠도 오지 않는 것처럼 잠을 이루기가 어려웠다. 심할 땐 구토를 한 뒤에야 결국 잠들 수 있을 때가 몇 번 있었다. 나는 원래 잠들었다 하면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잠드는 편인데 입덧 기간에는 자는 도중에도 내 몸이 불편해서인지 몇 번씩 잠에서 깨고, 또 잠들기 위해 애를 쓰는 과정의 반복이었다. 잠드는 시간이 무서울 정도였다. 

또 힘들었던 점은 분명 내 몸이 음식을 거부해 제대로 식사를 못 하고 있는데 다른 한 편에서는 본능적으로 배가 고프니까 음식을 원한다는 점이었다. 분명 같은 몸인데도 서로 장단이 안 맞는 느낌. 특히 제대로 밥을 못 먹을수록 맛있는 음식, 특히 예전에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는 음식들에 대한 갈망이 엄청 강해졌다. 어릴 적에 엄마랑 먹은 잔치국수, 대학교 때 친구랑 먹은 파전처럼 특정한 가게의 구체적인 음식들이 너무 먹고 싶었다. 그러나 이곳은 영국. 한식당이나 한인 마트가 있긴 하지만 한국에서 먹은 바로 그 음식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음식들을 못 먹는 것도 꽤 힘들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사실 이 음식들도 전부 내 환상 속에 있었을 뿐 막상 남편이 옆에서 최대한 비슷한 음식을 구하거나 만들어줘도 결국 제대로 먹지는 못했다. 

그리고 온종일 멀미 또는 숙취에 시달리는 느낌이다 보니 정말 어떤 것도 하지 못했다. 지금은 그래도 입덧이 거의 끝나가서 이렇게 차분하게 글도 쓸 수 있지만, 입덧이 심할 때는 가만히 누워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기 어려웠고 하고 싶지 않았다.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도서관에서 공부하거나 악기 연주, 운동하기 등의 내 일상생활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할 수 없으니 무기력함까지 느껴졌다. 

그러나 와중에 가장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불안감이었다. 중간중간 입덧이 살짝 완화되는 날도 있었다. 근데 임신 초에 갑자기 입덧이 없어지면 유산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날엔 불안함에 오히려 마음이 더 힘들었다. 너무나 불안한 마음에 당장 아기를 확인해야 할 것 같아 남편과 차를 몰아 먼 곳까지 초음파 스캔을 하러 가기도 했다. 오히려 그 괴로운 입덧이 제발 돌아오기를 기도하며 차를 타고 가던 그 길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다행히 아기는 건강했었고, 걱정한 것이 무색하게 다시 입덧이 돌아와 변기를 붙잡고 구토를 하면서도 그래도 이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인제야 여러 사람의 입덧 경험을 들어보니 나는 이 정도면 약하고 짧은 입덧 축에 속하는 것이었다. 한 번도 나에게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는데 나를 가졌을 때 엄마는 거의 15주가 될 때까지 밥을 거의 먹지 못하고 새콤한 단무지 정도만 오독오독 먹었다고 한다. 물도 제대로 못 마시고 구토를 너무 많이 해 탈수 현상으로 입원을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출산의 엄청난 고통에 대해 반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배가 부른 임산부들은 일단 내 눈에 보이기 때문에 배려하기가 쉽다. 그러나 임신 초기 임산부들의 힘듦에 대해선 무지한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때의 임산부들은 겉으론 아무런 티가 안 난다. 그러나 정말로 고단하고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심지어 이때는 정말 유산의 가능성이 크므로 주변 사람에게 임신 사실을 잘 알리지도 못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남들과 똑같이 만원 지하철을 타 출퇴근을 하고 업무를 해내야 한다. 

임신으로 인한 신체적 변화는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영역 바깥이다. 그렇기에 사회가 정말 최소한의 배려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아무리 다리가 아프고 피곤하더라도 대중교통의 임산부 배려석을 비워둬야 하는 이유다. ‘임산부가 나타나면 비켜줘야지’라고 생각하면 이미 늦었다. 당신 바로 앞에 서 있는 그 여자가 입덧 때문에 당장이라도 토할 것 같은 속을 겨우 참고 힘겹게 서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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