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___Diary

영국의 의료 시스템이 힘들어

by 썸머Summer 2020. 1. 16.

오늘은 임신을 확인하고 병원을 방문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적어보려고 한다. 만약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임신테스트기로 확인 후 산부인과 방문’으로 끝났을 간단한 절차가 영국에서는 참 복잡했다. 

우선 영국은 NHS라는 국민 건강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어서 모든 병원비가 무상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약값도 면제된다. 나도 영국에 올 때 비자를 신청하면서 NHS 보건부담금을 지급했기 때문에 나도 무상 진료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만 말하면 정말 너무 괜찮은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렇게 모든 국민에게 (심지어 나 같은 외국인에게도) 무상으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다 보니 사회적 비용이 많이 들어서 그런지 병원의 문턱이 굉장히 높다. 의료보험제도가 지옥 같은 나라에서 온 사람이라면 만족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느끼기엔 정말 선진적인 의료보험제도를 갖춘 한국에서 온 나에겐 모든 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힘들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을 만나기가 너무 어렵다는 점과 초음파검사를 임신 전 기간 중 12주와 20주 단 두 차례만 제공한다는 점이었다. 

 

 



희미한 두 줄이 불안해서 정확히 주 수가 나오는 임신테스트기로 여러 번 테스트해본 뒤 비로소 임신이 맞는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럼 병원에 가서 제대로 확인을 해야 할 텐데 어디로 가면 될지 고민이 됐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우선 GP(보건소 같기도 하고 가정의학과 같기도 한 병원)에 가야 한다고 적혀있었다. 그러나 GP도 내가 오늘 가고 싶다고 맘대로 갈 수가 없다. 예약을 먼저 해야 하는데 예약 방법은 크게 전화예약과 인터넷예약. 아무래도 글로 예약하는 게 만만해 인터넷으로 하려고 시도해봤지만 내가 가는 GP만 그런지는 몰라도 인터넷으론 항상 예약이 꽉 찼다고 안된다는 말밖에 안 뜬다. 그래서 GP에 전화를 건다. 

내가 생각할 때 영어 회화에서 가장 어려운 장벽은 바로 전화통화인 것 같다. 얼굴을 마주 보며 대화를 하면 상대방의 몸짓이나 눈빛 등으로 맥락을 파악해 그 사람의 말을 100% 정확히 이해하진 못해도 대화를 나누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는 것 같은데, 전화는 오로지 언어 자체에만 의존해야 하니 상대방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여기에 이 지역의 억센 사투리나 아랍권 등 기타 지역 출신 영국인 특유의 악센트까지 가미되면...) 물론 상대방도 내 발음과 완전하지 못한 문장을 듣고 이해하는 것을 어려워하긴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어렵게 통화를 해서 GP 예약을 잡는다.

이후 GP에 방문해서 의사 선생님을 만난다. 이분들은 가정의학과 의사처럼(실제 전공은 잘 모르겠음) 다양한 과의 진료를 포괄적으로 다룬다. 나만 해도 그동안 감기에 걸렸을 때, 몸에 두드러기가 났을 때 모두 같은 GP에 왔었고 이번엔 임신 확인을 위해 왔다. 

한국에선 산부인과에 가면 초음파검사를 통해 임신을 확인하거나 하다못해 산모의 혈액이라도 뽑아서 검사하는 것 같던데, 여기서는 그냥 혈압만 재 준다. 일단 GP엔 그런 기계 자체가 없는 것 같다. 내가 임신테스트기로 확인했다고 하니까 축하한다고 하시며 마지막 생리 날이나 건강상태에 대해 가볍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는 것이 끝이다. (여행 일정 다 잡아놨는데 호텔이며 공연이며 다 취소 해야 해서 임신으로 인해 여행이 힘들다는 소견서를 써달라고 부탁했더니 흔쾌히 써주신 건 좋았다.) 

이제부턴 긴 기다림만이 남았다. GP의 의사 선생님의 기록을 바탕으로 내 의료 정보가 산부인과 전문의(2차 의료기관)로 의뢰(referral)되고, 조산사(midwife)를 연결해 준다. 물론 한국처럼 디지털? 자동화? 절대 아니다. 전부 우편으로 거북이처럼 온다. 21세기에 우편이라니. 아직 이곳은 아날로그가 대세다. 

그 후의 절차를 간략하게 말하면 

1. 2차 의료기관 전화번호 및 예약번호, 접근코드 등이 안내된 우편을 받는다. 
2. 2차 의료기관에 전화해 예약을 잡아달라고 요청한다.
3. 아마 12월 말 때쯤에 midwife 만날 수 있을 거야, 12주 초음파는 1월 중엔 볼 수 있을 거라는 답변을 듣는다. 
   (이게 예약된 거임ㅋㅋㅋㅋㅋㅋ)
4. 한 예약 씩 천천히 천천히 우편이 온다. 우편엔 ‘12월 00일 9시까지 midwife 만나러 와. 시간 변경하고 싶거나 취소하려면 전화해.’ 이런 식으로 적혀있다.

그래서 임신 초기 산모로서 하루하루 너무 불안했다. 유산의 위험이 크다고 그러는데 내 뱃속의 아이가 잘 있는 건지, 산모로서 나의 건강상태는 괜찮은 건지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너무 답답했다. 12주까지 초음파로 아이 상태조차 확인하지 못하다니. 물론 이런 모든 답답함은 사설병원에 가서 돈을 내면 해결되긴 한다. 대신 진료비가 아주 비싸다는 단점이 있지만.

 

이건 사설병원은 아니고 초음파 스캔해주는 곳의 가격정보이지만, 이 가격표로 사설병원 가격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프라이빗으로 출산하는 데 10,000파운드 실화냐고 ㅋㅋㅋㅋㅋ

 



다행히(?) 영국의 많은 산모도 나처럼 답답함을 느껴서 그런지 사설로 초음파 스캔을 해 주는 시설이 많았다. 초음파 스캔은 시설마다 조금씩 가격은 달랐지만 보통 임신 초 스캔 기준으로 한 회에 약 45~55파운드 정도였다. 그래서 6주 차부터 11주까지 매주 그곳에 가서 초음파 스캔을 통해 아이가 건강하게 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안도하는 일상을 보냈다. 

뭐가 이렇게까지 복잡해야 하는 걸까. 산부인과 하나면 모든 것이 해결될 텐데 GP에 2차 의료기관에 초음파스캔시설까지 빙글빙글 도는 것이 참 어려웠다. 아가의 건강한 출산을 위해서라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복잡한 영국의 의료 시스템에 잘 적응해보자! 

 

'B___Dia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NIPT 검사받은 날  (0) 2020.01.23
처음으로 midwife 만난 날  (0) 2020.01.22
입덧하는 이야기  (0) 2020.01.18
임신을 처음 확인한 날 이야기  (0) 2020.01.15
요즘 나에게 필요한 정리  (0) 2020.01.1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