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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___Diary

처음 병원 방문한 날

by 썸머Summer 2020. 1. 29.

영국은 임신 12주가 되어야만 병원에서 처음으로 초음파로 아기를 확인할 수 있다. 그동안 사설 기관에서 초음파 검사를 해왔지만 뭔가 정식으로 ‘병원’에서 검사를 한다고 하니 더 정확하고 자세할 것 같아서 기대가 컸다. 

그러나 여전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에는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한 것 같다. 처음 주차를 할 때부터 카드로는 정산이 안 되는 주차정산기기밖에 없어서 남편이 나를 병원 입구에 내려주고 ATM기를 급하게 찾으러 가며 정신없는 오늘 병원 방문을 예고하는 듯했다. 

남편이 주차를 하는 동안 나는 예약이 잡혀있던 Antenatal 부서로 향했다. 그런데 이 병원은 단순 산부인과가 아니라 종합 여성&어린이 병원이라서 규모가 너무 크고 부서가 촘촘히 나눠져 있었다. 어쨌든 Antenatal 부서에 갔더니, 만일 내가 초음파 검사를 한 뒤 아기 사진을 갖고 싶으면 5파운드를 내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 근데 5파운드는 여기서가 아니라 초음파 스캔 부서에서 직접 계산을 한 뒤, 바우처를 이곳으로 들고 와야 한다는 것이다. 병원 안내판을 따라 초음파 스캔 부서 도착. 계산은 무인안내기 형식으로 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아차. 빨리 계산하고 갈 생각으로 잔돈이 반환되지 않는다는 안내문을 읽지 못했다. 당당하게 10파운드를 넣었는데 돌아오지 않는 5파운드. 어쩔 수 없이 안내 데스크에 가서 사정을 설명했더니 매니저에게 안내 문구를 잘 읽어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 기계를 열어 5파운드를 돌려받았다. 아직 아무런 검사도 안했는데 벌써부터 내 정신은 안드로메다로. 

원래 10시 예약이었는데, 초음파 스캔 바우처를 구매하는데 시간이 걸려서 예약이 뒤로 밀려 한 30분을 기다렸다. 드디어 나의 차례. 병원에서 처음으로 만난 우리 아가! 건강하게 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초음파 스캔을 임신 초에는 1주일에 한 번씩 봤는데도 볼 때마다 혹시 하는 마음에 긴장이 되고, 건강하게 잘 있는 모습을 확인할 때마다 왠지 뭉클한 감동이 밀려온다. 주수에 딱 맞게 무럭무럭 잘 자라줘서 고마운 마음이 가득했다. 기형아 검사 때문인지 의사분이 코를 보려고 했지만 우리 아기가 그날따라 웬일인지 고개를 내 등 쪽으로 아예 돌려서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 제대로 얼굴을 못 본 것은 좀 아쉬웠지만, 그래도 건강하게 잘 있어줘서 고맙고 또 고마웠다. 

초음파 스캔이 끝나고 midwife와의 만남을 위해 대기. 처음 안내된 방으로 가서 소변검사와 간단한 체중, 혈압 및 체내 일산화탄소 농도(아마 흡연 여부를 측정하는 듯)를 검사한 뒤 또 다시 대기. 병원으로 방문하라는 안내장에 왜 총 진료시간이 3시간 넘게 걸릴 수 있다고 적혀있었는지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드디어 midwife를 만나서 몸 상태에 대해 얘기를 하였다. 그런데 분명 몇 주 전에 MW(midwife)를 만났는데 각각 다른 병원이라 그런지 그때의 MW가 기록한 내 정보들이 시스템 상에서 제대로 연계가 안 된 것 같았다. 특히 그때 MW가 혈관을 못 잡아 혈액검사를 못했다는 내용이 기록이 안 되어 있었다고 했다. 그 외에도 내가 궁금했던 많은 질문들에 대해 속 시원히 대답을 듣지 못해 답답했다. 예를 들면, 입이 너무 심하게 헐어서 임신 중에 입병 약을 발라도 되는지 물었더니 자기는 처방권한이 없기 때문에 GP에 가서 문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두통이 좀 있는데 철분제를 먹는 것이 좋겠냐고 물었더니 그것도 혈액검사 결과를 봐야 안다고. (혈액검사도 아직 안 해줬으면서..) 한국에선 갑상선수치니 자궁경부길이니 별걸 다 물어보고 알려주고 하는 것 같던데 내 질문정도도 해결을 못하니 결국 MW가 내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도대체 뭔가 싶어졌다. 

MW와 만남 뒤 이제는 혈액검사 부서로 이동. 오늘 하루 병원 내에서 몇 군데의 부서를 돌아 다녔는지. 혈액을 뽑으러 갔는데 병원 내에서도 카드를 수기로 기록해 그걸 다른 부서에 전달하는 방식이라 그런지 뭔가 소통이 안 되는 모습이었다. 원래라면 내가 9주쯤에 산전검사를 위해 혈액을 뽑았어야 했고, 16주쯤에 기형아검사(quad test)를 위해 혈액을 뽑아야 하는데 12차에 혈액을 뽑겠다고 온 나에 대해 이 사람은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피를 뽑는 건지 간호사분들이 혼란스러워 했다.  

오늘 내가 받아야 할 검사는 산전검사다, 9주 때 혈관을 못 찾아서 못했다라고 아까 MW에게 했던 설명을 또 다시 열심히 반복해서 겨우 혈액을 뽑기 위해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시련을 끝이 아니었다. 또 다시 반복된 피 뽑기 실패. 왜 어째서! 나 정말 한국에서는 간호사 선생님들이 단 한 번도 내 혈관을 못 잡으신 적이 없었는데. 심지어 왼팔은 저번 주 NIPT검사 때 피를 뽑아서 아직 멍이 선명해서 시도를 못하니 오른팔만 죽어라 찔러댔다. 팔뚝은 도저히 안 되겠다고 조금 아파도 손등에 시도해보자고 하시는데 도저히 그러자는 말이 안 나왔다. 결국 그 간호사분이 SOS를 요청해 달려온 피 뽑기 실력자 간호사분이 한 번에 성공을 해서 이번엔 다행히(?) 그래도 혈액 검사를 할 수는 있었다. 

이후 20주 스캔검사와 28주 당 검사를 또 각각의 부서에 찾아가 MW가 수기로 기록해준 종이들을 한 장씩 제출하는 것으로 첫 병원 검사가 마무리됐다. 

병원 한 번 갔다 오는 것만으로도 온 몸의 에너지가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분명 의료인 한 분 한 분은 너무나 친절하다. 일일이 다 설명해주고 내가 잘 못 알아들으면 귀찮아하지 않고 천천히 다시 설명해주는 등 불친절하거나 쌀쌀맞다는 인상은 전혀 없다. 그런데 뭔가 전체적인 의료 시스템이 빨리빨리 나라에서 온 나에게는 너무 답답하다. 왜 내 기록이 병원 내에서 전산으로 처리되는 것이 아니라 일일이 종이를 들고 다녀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GP와 MW, 그리고 2차병원으로 역할이 분리되다 보니 무슨 증상이 나타날 때 누구에게 바로 찾아가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내가 너무 호들갑을 떨고 불안해하는 건가. 이 나라의 임산부들은 어떻게 이 시기를 넘기고 있는 걸까. 어쩌면 이게 맞는 것일지도 모른다. MW의 말처럼 그냥 맘을 편하게 가지고 물을 많이 마시는 것이 가장 건강한 처방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의 진료행위가 과잉이었던 걸까. 이런저런 고민에 빠지게 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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