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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이의 눈으로 보는 세상 24

영국에서의 마지막 여행 ; 스노우도니아 임신과 코로나 19 때문에 정말 거의 몇 달간 거의 집 안에만 있다가 이번 주에 쫓기듯 한국으로 돌아가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남편이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한 곳이라도 여행을 다녀오자는 제안을 했다. 테네리페에 다녀오고 크게 데였기 때문에 내심 걱정되기도 했지만, 당일치기 드라이브 일정으로는 다녀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기 위해 차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차 안에서 먹을 유부초밥도 싸고 오며 가며 마실 아이스커피도 미리 내려서 냉동실에 얼려두었다. 쓰고 갈 마스크와 손 세정제에 알코올 스프레이까지 준비 완료! 그런데 갑자기 여행 전날 저녁, 총리가 중대한 발표를 했고 그 내용은 거의 외출금지령에 가까웠다. 모든 가게가 다 문을 닫는 것은 물론이고 그냥 두 .. 2020. 3. 27.
EXODUS 전날의 모래폭풍이 잠잠해지길 바랐던 나의 기도를 하늘이 들어준 것인지 다행히 다음날 날씨가 다시 맑아졌다. 그러나 여행을 올 때와 마찬가지로 내일도 먼 길을 가야 한다는 생각이 은근히 스트레스가 된 것인지 배가 또 딱딱하게 뭉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체크아웃하기 전날 저녁부터 체크아웃하는 시간까지 방 침대에 꼼짝하지 않고 누워만 있었다. 누워서 인터넷으로 신문기사나 넘겨 보던 그때, 속보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있는 테네리페섬에서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발생했고 그 확진자가 머물던 호텔 투숙객 수백 명이 전부 그 호텔에 그대로 꼼짝없이 격리당했다는 뉴스였다. 정말 내 눈을 의심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여긴 정말 유럽 대륙이랑도 꽤 떨어진 작은 섬인데, 스페인은 내가 여행을 올 때만해도 확진자가 1명.. 2020. 2. 29.
사하라에서 불어 온 모래폭풍 이번 여행은 앞에서도 썼듯이 내가 가장 마음을 졸이고 걱정했던 여행이었다. 비행기가 무사히 착륙한 뒤 택시를 타고 호텔에 도착하는 그 순간까지도 마음을 놓지 못했다. 하지만 태양이 내리쬐는 해변의 노천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는 그 순간엔 역시 여행 오길 잘했다는 생각만 들었다. 특히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임신을 기념하는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아름다운 자연광 덕분에 어디로 카메라를 들어도 사진이 예쁘게 찍혀서 기분이 정말 좋았다. 늘 보던 풍경을 벗어나 그리웠던 따스한 햇볕,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 아름답게 빛나는 바다 속에 내가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한국에서 들려오는 걱정스런 소식들도 태양 아래 부서지는 천진한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아득히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 무슨 .. 2020. 2. 29.
여행을 떠나요 해외에서 거주하는 경험이 내 인생에 다신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는 임신을 확인하기 전까지 거의 한 달에 한 번은 여행을 다녔다. 남편과, 엄마와, 때론 혼자서 영국의 각 지역과 유럽의 다양한 나라들을 다녀왔지만 임신 사실을 알고 난 뒤엔 임신초기의 위험과 입덧 등으로 12월 러시아 여행, 1월 뉴욕 여행을 미련 없이 취소했다. 심지어 우리 지역엔 차이나타운이 형성되어 있을 만큼 중국인들도 많이 살고 있어서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걱정으로 시내에도 잘 나가지 못해 요즘엔 내가 살고 있는 동네 바깥으로도 안 나가고 칩거생활을 해오고 있었다. 그래서 임신 전부터 미리 예약했던 2월 스페인 섬 여행만큼은 정말 취소하고 싶지 않았다. 10월쯤에 가을이 끝이 나면서 지금까지 길고 지루한 영국의 겨울이 이어져왔다.. 2020. 2. 29.
<Topography of Terror> 방문 Topography of Terror 직역하면 ‘공포의 지형.’ 좀 더 다듬으면 ‘공포의 장소’ 정도라고 할 수 있으려나. 독일에서 나치당이 집권한 뒤 벌어진 SS, 게슈타포 같은 비밀경찰들의 범죄행각 및 홀로코스트의 참상에 대해 자세히 전시한 전시관이다. 이 건물은 이제는 무너져 흔적만 남은 베를린 장벽 근처에 있다. 많은 관광객들이 있었지만 이곳의 첫 느낌은 마치 버려진 땅 같았다. 주변엔 아무것도 없이 그저 이 땅을 분리시켰던, 지금은 부서진 벽과 철로 된 구조물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회색으로 가득 찬 고독한 장면이었다. 회색 하늘, 회색 땅, 회색 건물. 이 장소와 건물을 거창한 추모 공간처럼 꾸미려는 의도는 없어보였다. 그저 그들이 과거에 어떤 일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객관적 증거물처럼 덩그러니.. 2019. 11. 17.
베를린에서 한 여러가지 생각들 나는 사실 ‘독일’이라는 나라를 여행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었다. ‘독일’하면 위대한 문학가와 철학자의 나라이며 세계사 특히 근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영향력이 큰 나라라는 것을 알지만 어디로 여행을 떠나고 싶냐고 물어봤을 때 한번도 독일에 가고 싶다고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베를린에 여행을 갔다 온 언니가 베를린에는 정말 독특한 이 도시만의 무드가 있다고, 혼자 여행을 하고 싶다면 꼭 베를린에 가보라고 추천해주면서 내 마음속에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처음 들어왔다. 그전에 내게 베를린은 내가 영화관에서 보다가 숙면을 취한 몇 안되는 영화 중 하나 정도였다고나 할까. (이번 베를린 여행을 준비하며 다시 한 번 이 영화를 봤는데, 내가 왜 잠들었는지 너무 잘 알겠더라. 대사 전달력 어쩔거야. 대사.. 2019. 1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