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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___Log

오랜만에 다시 찾은 일상

by 썸머Summer 2020. 2. 13.

 

오늘 정말 오랜만에 바이올린 수업에 다녀왔다. 선생님이 적어주시는 강의 노트를 보니까 작년 11월 27일이 마지막으로 적혀있던데 거의 석 달 만에 바이올린을 다시 잡은 것이다. 

그나마 내가 조금이나마 다룰 수 있는 유일한 악기는 피아노였다. 그러나 영국에 피아노를 들고 올 수도 없었고 여기서 잠깐 치자고 피아노를 사기엔 부담스러워서 이참에 새로운 악기나 배워보자고 시작한 바이올린이었다. 이제 겨우 활을 쥐는 법을 익히고 음계를 익히고 있었는데 임신을 하는 바람에 바이올린에 전혀 손을 대지 못했다. 

일주일에 한 시간 수업인데 괜찮겠지 싶었다. 임신 초에 이곳저곳 알리고 싶지 않아서 그냥 모른 채 수업을 다니려고 했는데 결국 그렇게 하지 못했다. 한 시간 동안 서서 바이올린을 켜는 것이 그렇게 힘들 줄이야. 평소엔 느끼지도 못한 선생님의 향수 향이 엄청 진하게 느껴지고 서 있는 것이 힘들어 식은땀을 줄줄 흘리다가 결국 집에 황급히 돌아와 구토하고 나서야 잠시 수업을 쉬고 싶다고 연락을 드렸다. 

평소에 별로 열심히 연습한 것도 아니었는데도 바이올린 수업을 못 가게 된 것이 내겐 꽤 우울했다. 바이올린도 바이올린이지만 수업이 끝난 후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플랫화이트 한 잔을 시켜놓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내가 좋아했던 내 일상이 갑자기 없어져서 몸도 힘든데 마음조차 힘든 겨울을 보냈었다. 

이제 입덧도 거의 끝나고 아직은 거동이 불편하지 않은 임신 중기에 접어들어 오랜만에 다시 수업에 갔더니 활력이 솟는 기분이다. 그동안 우리 집에서 퇴출당하였던 김치가 다시 식탁 위로 돌아왔다. 조금씩 다시 내 모습을 찾아가는 것 같다. 물론 이것도 잠시라는 것을 안다. 앞으로도 넘어야 할 큰 산이 많다. 하지만 잠시나마 다시 찾은 내 일상을 더 소중히 여기고 지금을 마음껏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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