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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지트 Costa Coffee 나는 공부도, 업무도, 취미 생활도 카페에서 하는 것을 좋아하고 한 번 카페에 앉으면 두세 시간은 거뜬히 혼자 보낼 수 있는 소위 ‘카페 죽순이’다. 그래서 영국에 도착한 뒤에 곧바로 내가 즐겁게 시간을 보낼 만한 적당한 카페를 열심히 찾아다녔다. 그리고 내 조건과 완벽하게 부합하는 이상적인 카페를 발견했다. 그곳이 바로 대학교 내 체육관에 있는 ‘Costa Coffee’였다. 우선 안 그래도 대중교통비가 비싼데 카페에 다닌다고 매일 교통비를 쓸 수 없으므로 내가 자주 가는 카페는 걸어서 갈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 우리는 대학교와 나름 가까운 곳에 집을 얻었기 때문에 이곳은 충분히 걸어 다닐 수 있었다. 게다가 체육관에 있으니 카페에 가는 겸에 운동까지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또 나는 카페에서 주.. 2020. 3. 17.
이제는 꿈에서 깨어날 시간 한국으로 돌아가는 편도 항공권을 끊었다. 원래 내가 영국에 머물 수 있었던 기간은 2018년 9월부터 2020년 7월까지였다. 그러나 출산일도 7월이라 출산일에 가깝게 비행기를 타는 것에 대한 부담 때문에 예정 날짜보다 약 2개월 빨리 돌아가는 표를 구매했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갈수록 나빠지기만 하는 유럽의 상황과 영국 총리가 얼마 전 발표한 herd immunity(집단 면역) 전략에 대한 걱정, 이곳에서는 제대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없을 것 같은 불안함에 귀국 날짜를 한 달이나 훌쩍 앞당겨 3월 말에 돌아가게 되었다. 영국에 가는 것이 결정되고 떠날 준비를 하는 그 시간 동안 얼마나 설렜는지 모른다. 6년 차에 접어든 직장생활에 슬슬 지쳐갈 무렵 영국으로 훌쩍 떠난다는 사실은 나를 얼마나.. 2020. 3. 16.
태교? 태교! 흔히들 태교와 그 필요성에 관해 이야기하기에 나도 자연스럽게 ‘태교를 해야지’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절실한 필요성은 잘 느껴지지 않아서 자연스레 그냥 손을 놓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엄마랑 통화하다 알게 되었는데, 엄마는 나를 가졌을 때 종일 전래동화 테이프를 틀어놓고 계셨다고 한다. 또 내 움직임이 활발할 때는 동화책도 많이 읽어 주고 심지어 과일을 먹을 때도 예쁘고 좋은 것만 보고 먹으려고 노력했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새삼 깨달았다. 나는 그냥 나 스스로 잘 커온 줄 알았는데 사실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엄마의 사랑과 노력을 무럭무럭 먹고 자랐다는, 새삼스럽지만 놀라운 사실을. 그래서 나도 내 뱃속 아기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어서 태교를 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이게 진짜 말처럼 쉬운 일은.. 2020. 3. 9.
이 시국 독서, 알베르 카뮈<페스트> 알베르 카뮈의 역작 를 읽어야지 생각은 했는데 늘 우선순위에서 밀리다가 요즘 같은 시기에 읽으면 왠지 더 몰입해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책을 꺼내 들었다. 책을 읽기 전에 나는 막연히 이 소설이 주제 사라마구의 와 같은 느낌일 거라고 예상했다. 가 ‘실명’이라는 전염병의 유행, 그로 인해 격리된 사람들, 그들을 억압하는 폭력, 눈먼 자들 사이의 끔찍한 범죄 등을 다뤘던 것처럼 도 ‘페스트의 창궐’이라는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인간들의 추한 본성에 관한 탐구가 아닐까 싶었다. 그렇지만 카뮈의 는 그 결이 좀 달랐다. 서술자의 감정보다 사건이 일어난 상황을 위주로 전달하는 건조한 문체 때문인지 기대했던(?) 폭력적인 상황이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추악한 인간들의 혼란은 잘 드러나지.. 2020. 3. 9.
20주 스캔 보러 간 날 오늘은 드디어 거의 한 달 만에 병원에 초음파를 보러 갔다. 오랜만에 아가를 만날 생각하니 설레기도 했지만, 오늘은 특히 20주에 하는 정밀 스캔을 하는 날(예약이 21주 차에 잡혀 한 주 늦었지만)이라 또 괜히 긴장되기도 했다. 초음파 검사를 할 때 아기가 잘 움직이지 않으면 이곳저곳을 보기가 어렵다는 글을 읽었다. 우리 아기도 태동 패턴으로 봤을 때, 초음파를 보는 시간이 잘 움직이지 않는 시간이라 초콜릿 우유를 마시면 아기의 움직임이 활발해진다는 글을 읽고 나도 진한 초콜릿 우유를 한 병 들이키고 병원에 갔다. 과학적 근거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신기하게도 원래 잘 움직이지 않은 시간대인데 태동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나의 예약 시간보다 30분이 지나서야 초음파 검사실로 들어갈 수.. 2020. 3. 8.
EXODUS 전날의 모래폭풍이 잠잠해지길 바랐던 나의 기도를 하늘이 들어준 것인지 다행히 다음날 날씨가 다시 맑아졌다. 그러나 여행을 올 때와 마찬가지로 내일도 먼 길을 가야 한다는 생각이 은근히 스트레스가 된 것인지 배가 또 딱딱하게 뭉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체크아웃하기 전날 저녁부터 체크아웃하는 시간까지 방 침대에 꼼짝하지 않고 누워만 있었다. 누워서 인터넷으로 신문기사나 넘겨 보던 그때, 속보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있는 테네리페섬에서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발생했고 그 확진자가 머물던 호텔 투숙객 수백 명이 전부 그 호텔에 그대로 꼼짝없이 격리당했다는 뉴스였다. 정말 내 눈을 의심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여긴 정말 유럽 대륙이랑도 꽤 떨어진 작은 섬인데, 스페인은 내가 여행을 올 때만해도 확진자가 1명.. 2020. 2.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