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83

뜨거운 여성 연대의 이야기 -<체공녀 강주룡>을 읽고 강주룡, 그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엔 한 번도 그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강주룡은 일제 강점기 여성 노동자이자 노동 운동가이며 한국 노동운동 역사상 최초의 여성 고공 농성자라고 한다. 역사교육에서 모든 역사를 다룰 수는 없으니 그중 주목받는 역사와 주목받지 못해 잊힌 역사가 있다면, 일제 강점기의 노동운동 역사와 그와 더불어 여성 노동가 강주룡의 역사는 주목받지 못한 쪽이다. 이 책은 이렇게 잊혀가는 역사를 기반으로 서술된 소설이다. 일제 강점기를 살아간 사람들이라고 하면 일제의 모진 핍박 속에 고통받는 평범한 조선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러나 이는 어쩌면 남성에게만 해당하는 얼굴일 것이다. 이 소설의 이야기를 따르면 이 시대의 여성들은 일제의 핍박과 동시에 심.. 2020. 2. 11.
고슴도치의 발 나는 발이 못생겼다. 어디선가 김태희가 자신의 외모 중 콤플렉스를 가지는 부분이 발가락이라고 하던데, 발가락만 못생겼다는 김태희와 달리 나는 많은 외모 콤플렉스 중 하나가 발이다. 내 발은 일단 발볼이 넓다. 그래서 앞코가 뾰족한 구두를 잘 못 신는다. 그리고 발등이 높아서 메리 제인 구두같이 끈이 있는 신발을 신으면 답답하고 불편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화룡점정은 내 발가락이다. 보통 사람들은 세 번째 발가락이 네 번째 발가락보다 키가 더 큰데 나는 그 반대다. 세 번째 발가락이 네 번째 발가락보다 미묘하게 키가 작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엄지, 둘째, 셋째, 넷째가 키가 비슷해져서 오리발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중학생 때까지는 내 발가락이 못생겼다고 자각하지 못했다. 학교에서는 실내화를, 놀이터에서는.. 2020. 2. 11.
17주차, midwife와의 만남 오늘은 딱 임신한 지 17주가 시작되는 날이다. 이제 아가가 태어날 때까지 161일 남은 시점. 원래는 16주에 Midwife(MW)와 만나기로 되어있으나 우리 동네 GP에는 MW가 격주로 근무한다고 해서 15주보다는 그래도 17주가 낫겠다는 생각에 오늘로 예약을 했다. 예약시간은 14시 50분. 오늘은 남편이 사정이 있어서 우버를 타야 해 행여나 늦을까 14시 30분쯤에 집을 나섰다. 우버는 부르자마자 1분도 안 되어 집 앞에 도착했고 GP까지는 차로 10분도 걸리지 않아서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다. 접수처에는 “만약 당신이 예약한 시간보다 10분 이상 늦으면 예약이 취소될 수 있습니다”라는 경고성(?) 문구가 붙어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여러 번 병원에 왔지만 단 한 번도 예약시간에 딱 맞춰서 진료를 본.. 2020. 2. 6.
캐논힐 파크 우리 집 옆에는 아주 멋진 공원이 있다. 한국으로 단 한 공간을 떼어 갈 수 있다면 이 공원을 떼어 가고 싶을 정도로 맘에 드는 공간이다. 처음 영국에 도착했을 때,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도 힘들고 내가 상상했던 풍경과는 조금 달라 한두 달간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때 이 공원이 내게 많은 위안이 되어줬다. 우리 집에서 걸어서 약 3분쯤 걸리려나. 정말 말 그대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어서 어느 날 어느 시간이든지 갈 수 있다. 게다가 꽤 오래된 공원인지 나무들도 정말 크고 울창해서 공원보다는 숲길을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계절마다 바뀌는 공원의 풍경은 또 어찌나 아름다운지. 봄에는 분홍 꽃이 피고 여름에는 일광욕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이 잔디밭에 풀썩 누워 뒹굴뒹굴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2020. 2. 3.
양육자로서의 마음가짐 오늘 오랜만에 초음파를 보고 왔다. 잘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도 초음파를 보러 가는 날은 괜히 긴장된다. 남편도 나도 긴장 때문인지 초음파 검사를 하러 가는 차 안에서 별말을 하지 않는다. 다행히 감사하게도 우리 아기는 건강하게 잘 있었고 성장도 정상 범주에 잘 있었다. 내 태반이 조금 낮다고해서 그게 좀 신경쓰이긴 하지만. 원래 지금까지 초음파를 볼 때는 머리-엉덩이 길이만 재어줬는데, 이제는 아기가 좀 커서 그런지 머리 크기, 배의 크기, 다리의 길이를 대신 재어줬다. 그런데 모든 성장이 정상 범주에 들어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다리 길이가 평균보다 조금 낮은 것이 신경 쓰였다. 내가 입덧 때문에 단백질이나 칼슘을 많이 못 먹어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남편이 팔다리가 긴 편인데 남편을 닮아야 할 텐데 .. 2020. 1. 3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한 생각 전염병은 공포다. 우리 주변에 늘 존재하지만, 그 존재를 잊고 살던 우리에게 죽음을 상기시키는 공포다. 게다가 아직 백신마저 찾지 못했다고 하면 죽음의 그림자가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 공포다. 다른 어떤 것도 아니고 그냥 학교에 가고 일터에 가고 사람들을 만났을 뿐인데 눈에 보이지 않는 타액을 통해, 공기를 통해 죽음의 신의 칼날이 나를 향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참을 수 없이 두렵다. 내가 기억하는 범위 내에서도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여러 번의 신종 전염병의 유행이 있었다.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그런데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그 전의 병은 내게 느낌이 아주 다르다. 그동안은 그냥 손 잘 씻고, 마스크 철저히 쓰는 등으로 개인위생에만 철저하면 뭐 큰일이 있겠냐 싶었다. 워낙 언론에서 떠들어대니.. 2020. 1.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