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발이 못생겼다. 어디선가 김태희가 자신의 외모 중 콤플렉스를 가지는 부분이 발가락이라고 하던데, 발가락만 못생겼다는 김태희와 달리 나는 많은 외모 콤플렉스 중 하나가 발이다.
내 발은 일단 발볼이 넓다. 그래서 앞코가 뾰족한 구두를 잘 못 신는다. 그리고 발등이 높아서 메리 제인 구두같이 끈이 있는 신발을 신으면 답답하고 불편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화룡점정은 내 발가락이다. 보통 사람들은 세 번째 발가락이 네 번째 발가락보다 키가 더 큰데 나는 그 반대다. 세 번째 발가락이 네 번째 발가락보다 미묘하게 키가 작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엄지, 둘째, 셋째, 넷째가 키가 비슷해져서 오리발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중학생 때까지는 내 발가락이 못생겼다고 자각하지 못했다. 학교에서는 실내화를, 놀이터에서는 운동화를 신었으니 딱히 발을 볼 기회도 없었고 다른 사람의 발을 유심히 볼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내가 중학생이던 어느 날, 친구와 함께 신발을 벗고 독서실에 들어가다 친구의 발이 눈에 띄었다. 친구의 발은 작고 발볼이 좁으며 발가락이 엄지부터 새끼까지 차례로 키가 작아지는 일명 ‘칼 발’이었다. 그때까지 난 모든 사람의 발이 내 발처럼 생겼을 거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해 왔는데 친구의 발은 나와 달리 만화 주인공이나 인형의 발 같았다. 세상에 저런 발도 있었다니! 그때부터 신발장에서 신발을 갈아 신을 때 친구들의 발 모양을 유심히 보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작고 앙증맞으며 날씬한 ‘칼 발’들이 많아 놀랐던 기억이 있다.
엄마가 나를 낳자마자 처음 확인한 것은 손가락과 발가락이 각각 10개씩 잘 붙어있는지였다고 한다. 그런데 내 세 번째 발가락이 네 번째 발가락 뒤로 많이 들어가 있어서 엄마는 순간적으로 내 발가락이 네 개로 보여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고 하셨다. 그래서 엄마는 아기 때부터 내 세 번째 발가락과 네 번째 발가락 사이에 붕대를 계속 감아 놓았다고 한다. 아기를 낳자마자 정말 깜짝 놀랐을 엄마, 아기의 작은 발가락에 붕대를 감았을 엄마를 생각하면 괜히 기분이 애틋해진다. 덕분에 지금은 전혀 발가락이 네 개처럼 보이지도 않고 세 번째 발가락이 키는 좀 작아도 곧게 잘 서 있다.
뱃속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으니 나도 우리 아기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지면서 나와 남편의 좋은 점만 닮아서 태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길고 날씬한 팔다리는 아빠를 닮았으면 좋겠고, 상대적으로 오똑한 코는 나를 닮았으면 좋겠다. 눈은 아빠를, 피부나 머릿결은 나를 닮았으면 좋겠다. 이건 어디까지 나의 의견이고 남편의 의견은 좀 달라서 서로 우리 아가가 자신을 더 닮았으면 좋겠다는 즐거운 논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곱슬머리인 게 너무 콤플렉스라 아기는 꼭 직모로 태어났으면 하는 마음에 파워 직모인 아빠와 결혼한 엄마에게 태어난 내가 엄마를 닮아 곱슬머리인 것처럼 세상에 어디 마음대로 되는 일이 있겠는가. 손가락 발가락이 각각 10개씩 잘 있으면 됐지. 못생긴 발을 포함해 하자가 여러 군데 있지만, 엄마 아빠에겐 내가 제일 예쁜 고슴도치인 것처럼 우리 아기도 내게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고슴도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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