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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이의 눈으로 보는 세상

파리 오르세미술관 방문기

by 썸머Summer 2019. 10. 23.

이번 파리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곳은 바로 오르세미술관이었다. 사실 파리에 한 번 더 오게 된 이유 중, 오르세미술관 방문이 가장 큰 이유일 정도로 정말 꼭 한번은 방문하고 싶은 미술관이었다. 대학에 다닐 때, 친구가 유럽여행을 다녀왔었는데 그때 친구가 여행에 관한 얘기를 들려주며 철도역을 리모델링해 미술관으로 탄생시킨 오르세미술관이 가장 아름답고 좋았다고 해서 그때부터 언젠가는 나도 꼭 들러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었다. 

나처럼 이 미술관에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지 미리 인터넷으로 표를 예매하고, 개관시간인 9시 반에 맞춰서 갔음에도 불구하고 꽤 길게 줄이 늘어서 있었다. 그러나 그 전날 모나리자하나를 보기 위해 1시간가량 줄을 섰었기 때문에 이 정도는 충분히 기다릴 만했다그리고 이번 파리 여행 때 가져갔던 책 발칙한 현대 미술사를 읽으면서 입장 순서를 기다리니까 지루하지도 않았다.

오르세미술관은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소위 인상파, 인상주의라고 큰 범주를 설정한다면 거기에 묶일 수 있는 화가들의 작품을 아주 많이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이 책이 감상에 아주 많이 도움이 됐다. 굉장히 쉽고 재밌게 미술사를 설명하고 있으며 특히 현대미술의 태동이라고 할 수 있는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 부문을 초반 다섯 장에 걸쳐서 잘 설명하고 있다. 책 제목이 발칙한 '현대 미술사'인데 오히려 현대미술보다 현대미술의 태동 부분이 더 잘 서술된 듯하다. 오디오 가이드가 잘 설명을 해주긴 하지만 전체적인 미술사의 맥락 속에서 그림을 감상하는 것도 꽤 즐거우므로 오르세 미술관을 방문할 예정이 있는 사람들은 이 책이나 아니면 다른 미술사 책이라도 읽고 가면 더욱 풍성한 감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근데 이 책의 e북은 추천하지 않는다. =_=; 왠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e북과는 다르게 pdf 형식으로 나와서 읽기가 너무 어렵다. 글자가 너무 작아서 눈이 빠지는 줄. 글자크기 조절하면 화면크기랑 안 맞음.)

 

또 혹시 방문할 사람을 위해 한 가지 더 팁을 알려준다면,
일단 들어가자마자 5층으로 향하는 게 좋다. 사실 오르세의 하이라이트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인상주의 미술 작품일 것이다.  그 작품들은 전부 5층에 모여있다. 체력적으로 여유 있을 때 하이라이트를 감상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그리고 앞에서 말했듯이 오르세미술관은 그 전에 기차역으로 쓰였기 때문에, 이 미술관은 거대한 시계탑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오르세의 명물인 시계 사진을 찍고 싶다면 전시를 보기 전에 먼저 시계 사진을 찍으러 가는 것이 좋다.  5층에 올라가면 먼저 카페가 나오고 여기에도 시계가 있지만 일단 지나가는 것이 좋다. (여긴 나중에 카페에 앉아서도 즐길 수 있으니까)그리고 전시관이 이어지는데, 이곳의 그림들을 관람하지 않고 일단 쭉쭉 지나쳐서 걸어간다. 그러면 오르세의 또 다른 시계탑 쪽에 도달한다. 같이 5층으로 올라온 관람객들이 많았는데 다들 전시를 먼저 봐서 그런지 다른 편 시계탑 쪽으로 갔더니 사람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멋진 시계 사진을 많이 건질 수 있었다. >_< 그리고 그림을 시대순으로 감상하기 위해서라도 이곳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관람객이 몰리기 전에 시계를 독차지함+_+

에두아르 마네, <풀밭위의 점심식사>

시계탑에서 사진 몇 장을 찍고 나서 관람을 시작했다.
새로운 미술의 시대를 연 선구적인 작품,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가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지금 봐도 나체의 여인에게서 눈길을 뗄 수 없는데 그 당시엔 얼마나 충격적이었을지 추측할 수 있었다. 분노한 관람객들이 우산이나 지팡이로 이 그림을 훼손하려고 해서 높이 전시했다는 일화가 이해가 된다

이 작품을 보고 있자니 시대를 앞서나간다는 것이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당시 마네는 프랑스 미술의 주류였던 왕립 아카데미 심사위원들에게 조롱을 당하고 살롱전에서 낙선한다. 그러나 마네는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었고 미술사에 이름을 남겼으며 현재 많은 관람객들이 이 작품을 보러 오르세에 찾아온다. 오르세미술관에는 당시 아카데미의 선택을 받았던 작품들도 많이 전시되어있다. 이 작품들 또한 굉장히 훌륭하다.
그러나 ‘에두아르 마네는 알아도 알렉상드르 카바넬까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1863년 살롱전에서 낙선했을 뿐 아니라 굉장한 비판을 받았던 <풀밭 위의 점심식사> 앞에 현재 많은 관람객들과 그 그림의 훌륭함을 설명해주는 가이드가 몰려있는 장면과 같은 살롱전에서 큰 성공을 거둬 나폴레옹 3세가 구입하기까지 했던 알렉상드르 카바넬의 <비너스의 탄생> 앞이 비교적 한산했던 장면이 대조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혁신은 한순간에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과거와 역사가 쌓이고 그것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것들이 탄생한다. 하지만 많은 새로움이 탄생했던 19세기 말, 20세기가 저물고 새로운 100년이 눈 앞에 펼쳐졌을 그 시기에 새 시대의 문을 열 수 있었던 사람들과 그렇지 못했던 혹은 그러지 않았던 사람들의 갈림길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앙리 팡탱 라투르 <들라크루아에게 바치는 경의> 

그래서 이 그림 속의 그림 '들라크루아'를 비롯해 마네와 보들레르 등의 면면을 한참 들여다봤다. 새 시대가 왔음을 인지하고 살아내려 했던 사람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모네의 작품들. 모네 작품들에 대한 내 사랑은 이미 다른 글에서도 적었지만 정말 봐도 봐도 좋았다. 역시 나의 최애 화가 클로드 모네♥ 
(어떻게 이름마저 클로드 모네냐구 심지어 이름도 그림이랑 잘 어울려. 비슷한 예로 클로드 드뷔시도 왠지 음악이랑 이름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함ㅋㅋㅋㅋ) 

클로드 모네 <건초더미, 지베르니의 여름 끝자락>

오랑주리 미술관은 모네의 위대한 작품 '수련' 연작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정말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오르세 미술관도 오랑주리 못지 않게 모네의 명작파티였다 정말. 미술책에 늘 실려있던 <루앙 대성당 연작>부터 법대 교수로 잘 살던 칸딘스키를 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만들었다던 <건초더미>시리즈 중 하나까지. 특히 <건초더미> 앞에는 선생님과 아이들이 와 있었는데 앞에서 봤던 <양귀비 들판>과 이 그림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 같아?, 붓 터치에서는? 질감에서는?” 하고 선생님이 질문하고 아이들이 각자 자신의 느낌을 말하면서 감상하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진짜 내가 받은 미술교육을 생각하니 눈물이 다 나던....^_ㅠ); 

클로드 모네 <왼쪽을 바라보는 양산을 든 여인>

특히 <양산을 든 여인>은 최애 모네 작품 중에서도 나의 최애 작품(최애 of 최애!!!)인데 이걸 만날 수 있어서 정말정말정말 기뻤다. 특히 나는 세 장의 <양산을 든 여인>그림들 중에서 왼쪽에서 본 양산을 든 여인을 제일 좋아한다. 보통은 모네가 사랑했다는 아내와 그 아들이 잘 표현된 그림을 가장 좋아하던데 나는 인물의 얼굴을 가장 알아보기 어렵게 표현한 이 그림을 좋아한다. 난 이 그림 속에 이야기가 없는 것이 좋다. 이 작품에서 저 여자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바람에 흩날리는 풀밭, 치마, 흘러가는 구름과 같은 결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는 인물보다 빛과 바람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나는 그림을 보면서 노래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고요하게 감상하는 것도 좋아하는데 오르세 미술관처럼 인기가 많아 다양한 국적의 가이드들이 그림에 대해 설명하는 소리가 신경쓰이는 미술관에서는 노래를 듣고 있는 편이다. 이 그림을 볼 때 딱 맞게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https://soundcloud.com/bangtan/euphoria2019festa

 

Euphoria (DJ Swivel Forever Mix)by JK

Euphoria (DJ Swivel Forever Mix) Produced by Jordan “DJ Swivel” Young (Jordan “DJ Swivel” Young, Candace Nicole Sosa, Melanie Joy Fontana, “hitman”bang, Supreme Boi, ADORA, RM) Piano Arrangement – J

soundcloud.com

팬심도 가득하지만 >_< 이 노래도 듣고 있으면 상쾌한 바람을 맞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우연히 흘러나온 이 노래가 주는 감정과 이 그림이 잘 맞아 떨어진 것 같다. 노래를 그림으로 그리면 이런 그림이 나올 것 같고, 그림을 노래로 만들면 이 노래일 것 같았다. 한 그림을 그렇게 오랫동안 보고 있지는 못하는데 이 그림은 정말 노래가 몇 번이나 반복할 때까지 하염없이 보고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모네니 인상주의니 하는 것들이 사라졌다. 나와 그림 그리고 노래만이 존재했다.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 <물랭 드 라 갈래트의 무도회>

행복과 기쁨의 순간을 그린 르누아르. 이 시기에 활동했던 화가 중 어떤 화가를 좋아하나요? 라고 물으면 르누아르요라는 대답은 잘 안 나오지만, ‘르누아르를 좋아하나요?’라고 물어보면 라는 대답이 나오는 화가.

그의 그림은 보고 있으면 절로 마음이 따뜻해진다. 모네가 빛을 그릴 때, 르누아르는 분위기를 그리고 있었던 걸까. 관람을 마치고 뮤지엄샵에서 엽서를 고르는데 이상하게 다른 화가들의 작품보다 르누아르의 그림을 가장 많이 샀다. 역시 행복하고 따뜻한 감정은 오래 간직하고 싶으니까. 특히 동시에 걸려있던 <시골의 무도회><도시의 무도회>이 그림이 마음이 많이 간다. <시골의 무도회> 속 여자의 표정이나 분위기가 더 좋다는 평이 많던데 난 <도시의 무도회>의 저 정적이고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더 좋다. 뭔가 더 설레는 느낌.

뮤지엄샵에서 샀던 르누아르 엽서 <도시의 무도회> <시골의 무도회> <피아노 앞에 앉은 소녀들>

 

소녀가 안고 있는 이 고양이의 표정을 보라구. 마음이 따뜻해지고 싶을 땐 역시 르누아르.

 

폴 세잔 <사과와 오렌지>

 

세잔의 그림과 세잔의 아틀리에 사진 비교해보기 

 

폴 세잔은 앞에서 소개한 발칙한 현대 미술사에 한 꼭지를 차지할 정도로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화가이다. 세계 3대 사과로-아담과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 세잔의 사과-를 꼽는다던데. (근데 이젠 잡스의 사과도 끼워줘야 하는거 아닌가ㅋㅋㅋ) 세잔의 그림은 알고 볼수록 더 잘 보이고 실험과 실험을 거듭한 세잔의 집요함과 끈질김에 더욱 감탄하게 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세잔의 그림을 보니 봄에 다녀온 프랑스 남부, 액상 프로방스가 생각났다. 특히 세잔의 아틀리에는 정말 인상적이었는데 그 풍경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리고 내가 방문했을 때 오르세에서는 오페라의 드가라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고 오페라를 주제로 그린 드가의 작품들이 따로 모아져 있었는데 이 특별전도 좋았다. 발레리나를 그린 유명한 그림들도 좋았지만 드가가 조각도 이렇게 뛰어난지 몰랐는데 동적인 인체의 움직임을 조각한 조각상들이 그림만큼 인상적이었다. (이상하게 나중에 나와서 보니까 사진은 안찍었더라...) 

 

빈센트 반 고흐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에>

 

빈센트 반 고흐 <아를의 침실>

 

고흐의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starry night over the Rhone’이랑 아를의 침실을 그린 그림도 있었다.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에이 그림만 보면 대학교 때 전공 교수님이 떠오른다. 수업 도입부에 우리의 흥미를 이끌기 위해 이 그림을 보여주시며 돈 맥클린의 노래 빈센트’에서 유명한 starry starry night~~하는 그 부분을 불러주셨는데 도대체 무슨 과목이었고 이 그림과 수업 내용이 어떻게 연계되었는지는 하나도 기억이 안 나지만 그때 내가 있던 강의실, 내가 앉은 자리 그리고 그 교수님의 노랫소리가 기억이 난다. 가르치셨던 교수님 입장에선 속 터지시겠지만 오래 남는 기억은 대단한 지식보다는 이런 사소한 것뿐인 것 같다.

역시 고흐라 그런지 관광객들이 많이 몰려있었다. 그렇지만 난 이미 암스테르담에서 고흐에 푹 빠지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고 전날 경험한 모나리자의 악몽이 떠올라 고흐 그림 앞에서는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근데 전날 루브르에서 봤던 가이드님 중 두명이나 오르세에서 또 마주쳐서 깜짝 놀랐다. +ㅁ+ 맨날 이렇게 미술관에 관광객들을 데리고 와서 설명하는 것도, 가끔 한 번씩 오는 나 같은 관광객이야 좋지 저 가이드 분들께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밖에도 귀스타브 쿠르베의 '오르낭의 장례식' 같은 대작도 보고 구스타브칼리보트, 카미유피사로(평소에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이번 관람을 통해 새롭게 발견한, 소박한 사람들을 그리고 사회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멋진 화가!), 쇠라, 시냐크, 마티스 등 유명한 작가의 유명한 작품들을 감상하고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줬는지를 느끼며 감상하는 즐거운 시간을 만끽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즐겁지만은 않았던 순간들도 있었다. 우선 이 그림을 만났을 때다

메리 카사트 <정원의 소녀>

그냥 그림들을 둘러보며 전시관을 걷다가 이 그림을 봤는데 그냥 뭔가 다르게 느껴졌다.
그동안의 그림들에서 잘 보지 못했던 표정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자애로운 성모도 아니고 도발적으로 화가를 바라보는 여성도 아니고 일하는 소작농 여인도 아닌, 무엇인가 자기 일에 집중하는 여자의 표정. 전에 한번 궁금해서 내가 공부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본 적이 있는데 딱 저런 얼굴이었던 것 같다. 약간 심통이 난 것 같은 표정에 입은 살짝 삐죽 튀어나온 얼굴. 그래서 누가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 봤더니 처음 듣는 여성 화가였다.

메리 카사트라는 이 화가에 대해 찾아보니 여성들의 일상적인 생활과 모녀의 모습을 잘 포착해 그린 화가라고 한다. 갑자기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미술사에 관심이 많은 편임에도 그동안 내가 이야기했던 화가 중에 남성이 아닌 여성의 성을 가진 화가는 누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관에 걸린 수많은 그림 중엔 여자를 그린 그림이 넘치고 넘쳐난다. 심지어 선사시대의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마저도 여체 아닌가. 늘 보이는, 즉 시선의 대상이기만 했지 바라보는, 시선의 주체로서의 여성에 대해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는 사실에 스스로 충격을 받았다. 어느 위대한 화가의 연인, 누군가의 뮤즈로 존재했던 여성이 아닌 여성의 이름을 대어보라고 했을 때 얼버무리게 되는 나의 무관심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미술사를 서술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여성을 굉장히 홀대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현재도 그 홀대는 진행 중일 것이다. (단편적인 예로 미술계는 잘 모르지만, 몇 년 전 제니퍼 로렌스 등을 비롯한 할리우드 여배우들이 출연료에서 성차별을 받는다고 문제를 제기했었다.)

실제로 당시 파리의 인상파 화가들 사이에서 활동했던 여성 화가는 단 3명이었다고 한다. 그녀의 작품 근처에 그 3명 중 다른 한 명이며 메리 카사트와도 친하게 지냈다는 베르트 모리조의 작품이 있었다. (그녀는 마네의 부인이었다) 메리 카사트는 결혼이 자신의 커리어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여겨 비혼으로 살았으며 여성 참정권 운동에도 참여하였다고 한다.

메리 카사트 <오페라 관람석에서>

오르세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메리 카사트의 이 그림이 정말 인상적이다. 오페라를 관람하는 여성을 관찰하는 저열한 남자의 모습이라니. 이 그림 속 장면은 여성의 시각이 아니면 보이지 않고, 그 때문에 여성 화가가 아니라면 그려지지도 않았을 장면일 것이다.

애니 루이자 스윈어튼 <Mater Triumphalis>(뭐라고 번역해야 하는지; 승리의 마리아?) 

그러고 돌아보니 애니 스윈어튼의 그림도 전시되어있었다.
작년 11월쯤에 맨체스터에 방문했을 때, 우연히 맨체스터 미술관에서 서프러제트 100주년을 기념해 주최한 애니 스윈어튼의 전시회를 관람했었다. 그때 우연히 그 전시회를 들르지 않았다면 애니 스윈어튼이라는 화가에 대해서도 절대 듣지도, 알지도 못했겠지.

애니 스윈어튼은 1922년 영국 왕립 미술아카데미에 들어간 최초의 여성 예술가이다. 왕립 미술아카데미는 1768년에 설립되었다. 왕립 미술아카데미는 설립한지 154년만에 처음으로 여성을 받아들였다.

 

이처럼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다 객체로서의 나, 시선의 대상으로서의 나를 만날 때는 왠지 달갑지가 않다. 나는 분명 주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나는 타자일 뿐이라는 그런 느낌. 그것도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뭔가 왜곡되었을 때는 더욱 기분이 좋지 않다. 아니, 좋지 않은 것을 넘어 분노의 감정까지 든다. 회화를 전부 감상하고 조각을 감상하다 루이 에르네스트 바리아스의 조각 작품 누비아인(악어 사냥꾼들)’을 만났을 때 그런 감정을 느꼈다.

 

이 작품의 위대함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이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냥 불쾌했다.
암스테르담 미술관에서도 어느 작가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자카르타의 모습을 담은 미니어처가 전시되어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역사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 걸까.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이런 작품을 아직도 전시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당시(1877) 동물원에서 이국적인 동물 옆에 사람(유럽인이 아닌 사람들)을 전시했다는 일화를 명랑한 목소리로 읊는 오디오 가이드가 황당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일본박람회에 전시되었던 역사가 있어서 그런지 이런 조각품을 그대로 전시하고 있는 그들이 파렴치하게도 느껴졌다. 그들의 시선에서 야만적인 일상과 사냥하는 모습은 좋은 관광거리였겠지만 사람이 사람을 잡아다가 전시하는 그것이 문명인가. 그것이야말로 야만 아닌가난 고갱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의 타히티 연작들은 그 섬에 가서 성병을 퍼트렸다던 고갱의 일화를 제쳐두고서라도 좋아하기 어렵다. ‘원시주의라니. 그 또한 얼마나 오만한 명칭인가. 누구의 기준에서 원시라는 것인가.

이 조각은 자연사박물관 인류학 갤러리에 전시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그러나 이 조각가는 누비아인들이 사는 곳에 방문한 적도 없고 이 조각은 그의 상상에 의존한 것이다. 비유럽인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각은 이렇게 왜곡된 채로 마치 사실인 양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악어가 신기했는지 한국인 꼬마 아이가 조각에 호기심을 가지며 다가온다. 이 모습이 귀여웠던지 부모님이 조각 앞에 아이를 세우고 연신 셔터를 눌렀다. 그냥 난 이 모습이 씁쓸했다.

유럽의 화려한 미술관에서 소위 걸작이라는 작품들을 감상하고, 서양미술사에 흥미를 느끼고 배우면서 나도 모르게 내가 그들에 속한다고 착각했나 보다. 그런 착각 속에 있다가 이런 작품을 만나면 너무 뼈저리게 그들은 그들, 나는 그들의 영원한 왜곡된 타자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게 바로 현타?

​​오르세미술관은 훌륭하고 멋진 미술관이었다. 기차역을 개조했다는 건물은 아름다웠으며 특히 세계 어디를 가도 이렇게 유명한 작품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미술관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그만큼 아름다움의 이면 또한 깊이 느꼈던 미술관이었다. 여러 의미에서 잊지 못할 관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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