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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이의 눈으로 보는 세상

덴마크 코펜하겐 여행 (2)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 디자인 뮤지엄, 헤이하우스, 티볼리공원

by 썸머Summer 2019. 10. 11.

여정에 따라 정리한 나의 코펜하겐 여행기 :)

 

아침을 먹기 위해 브런치가 맛있다는 카페에 찾아가서 브런치 세트 메뉴를 시켰다. 그런데 나온 음식을 보니 아니 이거 덴마크다이어트 식단 아닌가요 ㅋㅋㅋ 물론 팬케이크 아보카도 요거트 베이컨도 있었지만 삶은 달걀, 토스트, 샐러드, 자몽, 블랙커피...덴마크다이어트 식단은 정말 덴마크 사람들의 식사st였군요 ^ㅁ^

 

루이지애나 현대 미술관


아침을 든든히 먹고 내가 코펜하겐에 오면 가장 가고 싶었던 루이지애나 현대 미술관으로 향했다. 이 미술관은 다른 미술관과 달리 미술관 자체가 전시 작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 미술관들이 주로 '모던함'을 내세우고 있다면 이곳은 여타 현대미술관과는 달리 전시 작품, 특히 조각들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이 미술관에서는 자연이 곧 예술이고 예술은 자연을 닮아있고 그리고 자연, 예술과 함께하는 '나'를 오롯히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보면 나무도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느껴지는 마법의 미술관 

 

루이지애나 미술관 관람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이곳,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이 전시되어 있는 홀이었다. 한 때 가장 비싼 예술작품으로 유명했던 바로 그 '걷는 사람'이라니!!  정말 기대를 많이 했는데, 기대한 것보다 훠어얼씬 더 뛰어넘는 전시였다. 

이곳으로 들어서면 바로 전면 통유리를 통해 호수공원이 보이고 <걷는 사람>이 무심하게 전시되어 있다.  청동으로 마치 철사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의 물질성과 바깥의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듯, 이루지 않는 듯 새로운 느낌을 선사하면서 유리를 통해 바깥 자연을 바라보는 사람, 조각을 감상하는 사람, 작품처럼 걸어가는 사람들이 모두 혼합되어 내 눈 앞에 펼쳐지는 그 광경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 되게끔 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지만 그곳에 박제된 것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시시각각 변하는 관람객들, 정지된듯 그러나 계절, 날씨, 시간 등에 따라 달라지는 자연, 그리고 그 속에서 변함없이 서 있는 조각의 조화가 묘하게 다가왔다. 약간은 앞 쪽으로 기울어져 걷고 있는 듯하지만 동적인 감각보다는 정처없이 걷는 느낌에서 정지된 느낌이 이 공간 속에서 극대화된 것 같다. 

 

1958년에 지어졌다는 미술관 건물은 바닷가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어서 날씨가 좋은 날엔 건너편 스웨덴도 보인다고 한다. 인터넷으로 본 사진에서는 파란 하늘, 더 푸른 바다, 빛나는 잔디와 함께 조각들이 있었는데 그러나 내가 간 날은 안개가 잔뜩 끼어서 바닷물조차 보이지 않아서 정말 아쉬웠다. ㅠ_ㅠ 

알렉산더 칼더의 조형물의 쨍한 색감이 한치앞도 안보이는 안개 속에 가려진 모습을 목격했을 때 나의 심정을 서술해보시오. 

안 좋은 날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너무 오고 싶었던 곳이어서 그만큼 완벽하길 바라서였을까. 미술관이 정말 너무 좋았는데도 자꾸 짜증이 났다. 특히 예쁜 사진을 많이 찍어가고 싶었는데 안개가 뿌옇게 끼어서 사진은 제대로 안 나오지, 원하는 구도가 있어서 친구한테 이렇게 저렇게 찍어달라고 부탁했는데 친구는 내 맘같이 찍어주지 않지, 핸드폰은 또 오래되어서 그런지 초점이 계속 나가지 뭔가 계속 불평을 토로할 일이 생겼다. 이런 나의 투덜거림을 옆에서 듣고 있던 친구가 대체 이렇게 좋은 곳에 와서 왜 이렇게 짜증을 내는 거냐고 말했을 때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여행지에서 이렇게 자주 짜증을 내는 프로 투덜러다. =_= 나도 나를 잘 알아서 진짜 나랑 여행 다녀주는 친구에게 늘 고마워하며 안 그러려고 조심하는데도 습관적으로 부정적인 사고를 한다. 도대체 무얼 위해 이렇게 짜증을 내고 있었던 건지. 사진이 좀 예쁘게 안 찍히면 어떤가. 내가 포토그래퍼도 아니고 사진이야 인터넷에 찾으면 내가 찍은 것보다 훨씬 멋진 사진이 잔뜩인 것을. 내가 그 장소에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감각을 무시하고 내 부정적인 감정에 매몰되어 있었다는 것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어제 코펜하겐행열차가 아닌 말뫼행열차에 올랐을 때도 웃으며 재미있는 해프닝이었다고 넘길 수 있었는데 그때도 혼자 얼마나 짜증을 냈던가. 부정적으로 흘러가는 습관적인 나의 사고방식에 대해 코펜하겐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한참을 생각했다.  참 이런저런 감정을 많이 느낄 수 있었던 미술관 방문이었다.

 

코펜하겐 디자인 뮤지엄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에서 바로 디자인 뮤지엄으로 향했다. 디자인은 정말 내가 문외한인 영역 중의 하나이지만 또 북유럽 하면 갬성, 북유럽 하면 디자인 아니냐는 생각으로 방문해보았다. , 광고 포스터, 소품 등 다양한 디자인이 전시되어 있었지만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 하고 있었던 것은 가구, 그 중 의자였다. ‘의자에 대해 살면서 깊이 생각하거나 눈여겨본 기억이 없는데 이 전시를 관람하며 의자를 꼼꼼히 살펴보니 무심코 지나쳤던 이 가구 하나하나에 예술이 담겨 있었다. 특히 간결한 형태가 주는 아름다움을 극대화한 디자인의 의자들이 눈에 띄었다.

생각해보면 의자가 정말 우리의 삶에서 꽤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예전에 의자와 책상이 굉장히 오래된 사무실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데 그때 일하는 절대시간은 다른 사무실에서 근무할 때보다 더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엄청 피곤했던 기억이 있다. 또 카페 가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데 내가 카페를 선택하는 기준도 커피 맛보다는 의자와 책상이 편안한가이다. 의자가 불편해서 얼마 오래 못 앉아 있는 카페는 아무리 커피가 맛있어도 두 번 방문하지는 않는다.

한국에 돌아가면 정말 꿈의 의자를 찾아 사고 싶다. 특히 책을 읽기에 좋은 의자. 푹신하되 너무 푹신해도 안 되고 옆엔 적당히 팔걸이가 있어야 하는데 팔걸이 사이의 간격은 내가 양반다리를 할 수 있을 그 정도높이는 살짝 낮은, 색깔은 오래 두어도 싫증나지 않을 부드러운 색, 소재로는 천도 가죽도 괜찮을 것 같다. 대신 몸체는 나무여야한다. 빅뱅이론에서 쉘든이 자신의 집에서 (0.0.0)의 기준점으로 두는 그 소파의 자리처럼 나도 언제나 앉고 싶은 그런 나만의 의자를 갖고 싶어졌다.

가구, 디자인 소품을 파는 HAY HOUSE 본점

근데 내가 선입견을 품고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코펜하겐은 정말 도시 자체가 세련되었다는 인상이 강했다. 보통 유럽에서 카페에 가면 아직도 막 19세기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 앤티크한 분위기의 카페거나 대충 의자와 테이블을 가져다 놓은 조그마한 카페나 체인점 아니면 주로 거리나 광장같이 바깥 분위기를 즐기는 카페가 대다수인 것 같았는데 코펜하겐에서 방문했던 카페들은 되게 우리나라 카페처럼 심플하면서도 감각적인 실내 디자인을 추구하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가 북유럽st의 디자인에 영향을 많이 받은건지 선후 관계는 잘 모르겠지만)

그리고 건물들도 유럽 도시다운(?) 화려한 건물들뿐 아니라 아트센터, 도서관(블랙다이아몬드), 오페라 하우스 등 현대 건물들이 마치 가구들처럼 간결하고 담백하면서 도시의 이미지를 전체적으로 세련되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소품들!!! 코펜하겐의 중심 거리에 HAY HOUSE라는 가게나 우리로 따지면 백화점 지하에 있는 물건들~ 그릇이나 주방용품 및 생활 소품~을 아예 따로 백화점의 한 건물로 빼놓을 정도로 양도 많고 물건 하나하나가 심플하면서도 생각지 못했던 부분까지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편리하게 디자인되어 있어서 정말 눈이 핑글핑글 돌아갔다. 디자인이라는 것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물건 하나하나가 생활의 행복을 더해주도록 도와주는 것 그 자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목을 길러서 한국에 돌아가면 우리 집을 카페처럼 꾸며보고 싶은데 할 수 있을까.

 

티볼리 공원


티볼리 공원의 공중그네 

( 나는 밤에 가서 멋진 사진을 못찍었기에 사진작가 케이채(@Kchae)님의 사진을 사용했다. https://www.kchae.com/)

티볼리 공원은 낮보다 해 질 녘이나 저녁이 아름답다는 얘기를 들어서 저녁을 먹고 방문했다. 티볼리 공원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놀이공원이라고 한다. 그래서 엄청 무섭거나 큰 규모의 롤러코스터는 없었다. 그렇지만 오래되었어도 소박한 공원에서는 마치 어릴 적 부모님의 손을 잡고 왔었던 것만 같은 이상한 아련함이 느껴졌다.

그렇게 공원을 돌아다니다가 공중그네를 보고 이건 꼭 타야 할 것 같아서 공중그네를 탔다. 공중그네, 왜 이름부터 나한테 아련한 감각을 느끼게 하는 걸까.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공중그네의 표지 디자인이 연상되어서일까, 아니면 공중이라는 단어만 겹치는 보아의 공중정원이라는 노래 덕분일까ㅋㅋㅋㅋㅋㅋㅋ어쨌든 flying chair라고 할 때는 느낄 수 없는 미묘한 어감이 '공중그네'에서는 느껴진다. 그리고 공중그네는 정말 티볼리공원을 방문할 예정이라면 반드시, , 무조건 타야 한다. 생각보다 높이 올라가고 보기보다는 빠르게 돌아서 약간 무섭지만(어찌나 줄을 꼭 잡고 탔는지 내렸더니 손에 선명한 줄 자국이...) 그럼에도 무조건 타야 한다. 코펜하겐 시내의 야경을 그네를 탄 채 한 바퀴 돌면서 보는데 그 환상적인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피터 팬과 함께 런던 하늘을 날던 웬디가 이런 기분을 느꼈을까. 바람을 가르며 내 다리가 코펜하겐의 밤하늘을 달리는 그 느낌. 한 번씩 하늘을 나는 꿈을 꾸곤 하는데 그 꿈속에서 봤던 장면을 실제로 보는 듯했다.

그리고 마침 운이 좋게도 내가 방문한 날이 티볼리공원 여름 시즌의 마지막 날이라 화려한 공연과 불꽃놀이를 했다. 공연하는 가수가 덴마크에서 굉장히 유명한지 정말 많은 관객이 그 가수의 공연을 보러온 것 같았다. 열심히 노래를 따라 부르던 관객에게 물어본 것과 인터넷 검색을 통해 그들이 '아네리네트, 사네 살로몬센, 리스 쇠렌센'이고 7~80년대 함께 활동했다가 최근 재결합해서 활동하는 나름 덴마크의 레전드(?) 가수라는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노래를 전혀 몰라도 노래를 따라 부르는 관객들과 함께 무대를 보고 있으니 그녀들의 엄청난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리고 놀이 공원의 백미 불꽃놀이! 그동안 난 불꽃놀이를 별로 안 좋아한다고 얘기를 했었다. 그동안 봤던 불꽃놀이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기도 했고 여의도 불꽃 축제나 광안리 불꽃 축제 등에 갔던 친구들이 정말 멋있다는 얘기를 했지만, 그 불꽃을 감상하기 위해 온종일 인파에 치여야 할 만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어디 가서 불꽃놀이 안 좋아한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내 머리 위에서 불꽃이 터질 때의 그 감각은 정말 생경함 그 자체였다. 정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 순간의 느낌. 밤하늘에 쏟아지는 빨강, 주황, 노랑, 파랑, 분홍, 초록의 색깔들과 불꽃과 닮은 음악 그리고 불꽃이 터지면서 내는 소리 모든 것이 합쳐져 내게 생전 처음 느끼는 감각을 선사했다.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하거나 사랑을 느끼는 그 순간을 표현하면 이런 모습일까 싶었다. 코펜하겐, 불꽃, 밤하늘, 놀이공원... 함께 생각해보지 않은 단어들이 서로 어우러져 황홀한 순간을 만들어냈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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