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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이의 눈으로 보는 세상

내겐 너무 어려운 그녀, 모나리자

by 썸머Summer 2019. 10. 5.

첫날, 첫 번째 일정으로 루브르박물관을 가기로 결정했다. 박물관이 너무 커서 하루 안에 다 보는 것도 불가능하고, 관광객이 넘쳐난다는 악평을 많이 들었지만 파리 하면 일단 '루브르' 아닌가. 비록 크게 좋은 시간을 보낼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파리에 두 번이나 왔으면 한 번쯤은 들러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욕을 해도 갔다 와서 욕을 해야 하지 않겠냐며.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루브르박물관은 내가 가 본 모든 미술관, 박물관들 중에 최악의 관람 경험을 안겨준 곳이 되었다.

처음에 입장할 때만 하더라도 루브르박물관이 time slot 제도를 도입해 딱 그 시간에만 입장이 가능하게끔 미리 예약을 받아서 그런지 걱정과는 달리 줄을 서지 않고 입장할 수 있었다. 내가 선택한 시간은 아침 9시 반. 물론 오디오가이드를 받는 과정에서 오디오가이드 티켓을 구입하느라 줄서기, 오디오가이드 받느라 줄서기의 과정을 겪었지만 그래도 그때만 하더라도 루브르의 악명에 비하면 관광객이 내 예상만큼 많지는 않다고 느꼈다.

쓸데없이 무거웠던 닌텐도 오디오가이드와 카푸치노 한잔

오디오가이드에 대해 잠깐 얘기하고 넘어가자면 일단 닌텐도에서 협찬을 했다. 근데 닌텐도 진짜 양심 어디갔냐. 자기 회사와 제품을 홍보하는 건 좋지만 오디오가이드 자체를 닌텐도로 만들다니. 일단 너무 무겁다. 닌텐도 게임기를 몇 시간 동안 목에 걸고 다닐 수 있겠는가. 들고 다니자니 그것도 번잡스럽다. 뭔가 최첨단은 맞다. 위치인식, 스크린터치 다 좋은데, 오디오가이드는 그냥 그 작품 앞에서 내가 번호를 눌렀을 때 작품에 대한 해설만 잘 나오면 되지 않나. 안그래도 넓은 박물관을 다니느라 피곤한데 오디오가이드까지 날 힘들게 했다.

루브르 박물관 내 카페에서 바라본 루브르박물관의 대표 건축물 피라미드 

어쨌든, 오전까지 나의 루브르 관람은 순탄한 편이었다. 루브르의 모든 작품들을 다 감상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해서 가이드북에서 추천한 루트대로 쉴라관에서 출발해 방대한 양의 고대 그리스 조각들 콜렉션들에 압도되었다가 드농관, 특히 '그랜드갤러리'에 끝 모르게 걸려있는 이탈리아 회화들은 루브르 관람의 하이라이트였다. 그 갤러리에 원래는 모나리자’도 걸려 있었는데 그 작품이 잠시 다른 갤러리로 이관해서 관람의 흐름의 정점을 찍지 못한 것이 좀 아쉬웠다.(모나리자가 이관한 것, 이것이 바로 재앙의 시작이었음을 그땐 몰랐지) 그리고 제리코, 들라크루아, 엥그르 등 19세기 프랑스 화가들의 유명한 작품들을 감상하며 그 작품 속 격동적인 감정과 드라마틱한 장면들에 몰입하였다. 그렇게 오전 시간을 보내고 루브르 카페에서 카푸치노 한 잔의 여유를 가진 후 3층으로 올라갔다. 벌써 다리도 아파오는 것 같아서 내가 좋아하는 17세기 네덜란드, 플랑드르 회화부터 먼저 보기 위해 리슐리외관으로 넘어가려고 했다.

가이드북 양반... 당신을 믿고 따른 나의 잘못임을 이땐 몰랐지.....

 

.........

3층의 쉴라관에서 리슐리외관으로 넘어가는 통로가 막혀있었다. 임시로 옮겼다는 모나리자도 리슐리외관에 있다고 하는데. 3층에서 다시 반지하층까지 가야 하는 것만으로도 피곤해졌으나 이건 일도 아니었다. 막상 반지층에 가니 모나리자를 보기까지 45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미술관 안에서 미술관을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야 하다니요. 내가 오전 내내 생각보다 여유롭게 관람했던 이유가 이미 이러한 정보를 알고 온 사람들이 전부 들어오자마자 리슐리외관을 먼저 갔기 때문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45분 줄서야 한다는 말에 온갖 전의를 상실하고 그냥 관람을 끝내고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나가는 길에 보니까 생각보다 줄이 빨리 줄어들길래 그래도 루브르에 왔는데, 그 유명하다는 모나리자는 한 번 봐야지 하는 생각으로 나도 대열에 합류했다.

리슐리외관까지 입장하는 줄은 빨리 빠지는 게 맞았다. 그러나 여기서 또 한 번 내가 잘못된 판단을 했음을 알게 되었는데, 리슐리외관까지 들어오는 것은 쉬워도 모나리자를 만나는 것은 어렵단다^^  모나리자가 3층에 있었는데 지하1층에서부터 3층까지 쭉 줄을 선 사람들.....^^.... 그러나 지금까지 줄 선 것이 아까워서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그냥 하염없이 줄을 설 뿐이었다. 내 뒷줄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개인 가이드 한 명과 같이 와서 그 가이드가  나가지도 못하고 그냥 하염없이 줄을 설 뿐이었다. 내 뒷줄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개인 가이드 한 명과 같이 왔는데 그 가이드가 열심히 모나리자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나 귀동냥으로 들으며 하염없이..... 그 가이드가 진짜 모나리자에 대해 별별 얘기를 다 해줬는데 그 많은 설명을 다 하고도 계속 줄을 서야 하니까 하다하다가 자기가 이번 여름에 뭐 했는지, 이탈리아인인 자기가 프랑스에 살며 느끼는 프랑스 음식에 대한 평가 등등 ㅋㅋㅋㅋㅋㅋ 

루브르 박물관 안에서  다시 리슐리외관으로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 있는 관람객들 

 

그렇게 정말 약 한 시간 쯤 줄을 서니 모나리자, 그녀가 보였다. 모나리자가 있던 방은 메디치 갤러리로 Marie de Medici를 위한 루벤스의 거대한 그림 24폭이 벽 4면에 빼곡하게 걸려있는 방이었다. 그 작품들이 루벤스의 역작은 아니지만 그래도 루벤스도 나름 위대한 화가고 거대한 규모의 그림이 꽤나 인상적인데도 불구하고 그 방에 있던 수많은 관람객들 중 그 그림에 눈을 돌리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모나리자 앞에서 루벤스의 그림이 그저 벽지가 되는 매직...^^ 

저 조그마한 그림이 모나리자, 그걸 보기 위해 몰린 수많은 관람객들, 벽지 취급 받고 있는 루벤스의 그림

차마 앞까지 가지도 못하고 멀리서 줌 땡겨서 찍은 흐리흐리한 모나리자 

게다가 모나리자는 그냥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30명 정도만 딱 그림 근처에 갈 수 있도록 바리게이트를 쳐서 그 가운데서도 정면, 앞에서 보겠다고 줄을 여는 순간 사람들이 우르르 뛰어갔고 또 일정 시간이 지나면 관람객들은 그 바리게이트 안에서 나가야만 했다. 어쩌다보니 줄을 서게 되었고 그래도 루브르에 왔는데 모나리자는 봐야지 하는 생각 반, 기다린 시간이 아까우니 끝은 보겠다는 생각 반으로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을 겪었지만 내 머릿속엔 의문만이 가득했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이 작품을 보려고 하는 걸까? 그동안 각 미술관의 간판스타라고 할 만한 작품을 많이 만났지만 이렇게까지 보기가 어려운 작품은 모나리자가 처음이었다. 이 작품만이 가진 다른 어떤 작품과도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냥 유명해서 유명한 것 아닌가. 이 작품이 그렇게 특별한가. 구글에서 검색하면 실제로 보는 것보다 더 선명하고 자세하게 볼 수 있는 이 시대에 직접 내 눈으로 작품을 보겠다고 몰려든 나를 비롯한 이 수많은 사람들은 뭘까. 이런 의문들은 자연스럽게 왜 우리가 미술관(박물관)을 방문하는지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졌다.

먼저 원본과 나 사이에 카메라가 놓이면서 색감이든 크기감이든 왜곡이 일어날 것이고 그런 왜곡이 없는 상태의 원본이 보고 싶기 때문에 방문하는 것일 것이다. 실제로 휴대폰으로 그림을 찍어보면 원본이랑 휴대폰 속 사진의 색감이나 질감이 많이 다르게 느껴지긴 한다. 또 크기에서 오는 느낌도 무시하진 못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루벤스나 램브란트 같은 바로크시대 화가들의 거대한 그림이 주는 압도감이나 황금빛으로 벽면을 가득 채운 클림트의 베토벤 프리즈 같은 작품들은 모니터 속에서는 그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진 않는 것 같다.

또 감상의 맥락이 존재한다는 것도 미술관을 찾는 이유인 것 같다. 단편적으로 존재하는 그림 하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보통의 미술관이 시대 순이나 작가의 연대기 순 등의 전시 맥락에 따라 그림을 전시하기 때문에 동시대 다른 작가의 그림을 비교하며 감상한다거나 작가의 초기작부터 후기작까지 감상할 수 있다는 점도 미술관을 찾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 사실 어쩌면 나는 그냥 미술관에 확인을 하러 가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내가 미술책에서, 인터넷에서 봤던 바로 그 그림. 그 그림을 직접 내 눈으로 보고 진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이랄까. 실제로 미술관에서 와 이 그림 미술책에서 봤었는데하는 감상을 여러 번 들었다. 나도 유명한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만나도 충격에 휩싸이는 그런 경험보다는 실제로 보는 것이 더 낫다는 식으로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이미지와 비교를 한다거나 평면의 사진으로는 느끼기 어려운 붓터치 등에 집중해서 보는 등의 감상을 하지 소위 말하는 원작의 아우라를 느낀 경험은 적은 것 같다. 특히 이제는 너무 자연스럽게 컴퓨터그래픽이 실제를 대신하는 시대 아닌가. VR 등을 통해 내 눈앞에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이 재현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아마 곧 있으면 시각적 재현 뿐 아니라 촉각이나 후각 등의 감각도 어떤 식으로든지 재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 이제 곧 미술관의 시대는 저물게 되는 걸까. 특히 모나리자처럼 크기가 주는 아우라도 없고 그렇다고 그림을 샅샅이 자세히 볼 수 있는 시간적, 거리적 여유도 없는 이런 관람 경험은 없어져도 되는 것 아닐까. 몇 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모나리자 앞에는 그녀를 실제로 보겠다는 관람객들로 북적거릴까.

미술관에 질린 채로 바깥으로 도망치듯 나온 적은 처음이었다. 미술관에 가면 가장 재밌는 일 중 하나가 shop에 들러서 명화를 가지고 만든 다양하고 재밌는 상품들이나 도록을 구경하는 일인데 가게에 들르기는커녕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왔다. 정말 내겐 너무나 어려웠던 그녀, 모나리자. 조용필 아저씨도 루브르박물관에 온 뒤에 이 노래를 불렀을까.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다 돌아서야 하는 걸까 / 눈물이 없는 그대는 모나리자


https://youtu.be/M9-cbmg_Ct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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