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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이의 눈으로 보는 세상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 방문기

by 썸머Summer 2019. 9. 18.

램브란트의 ‘야경꾼’이라는 걸작을 간판으로 보유하고 있는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에 방문했다. 오전 반 고흐 미술관, 오후 국립 미술관을 관람하려고 했는데 예상보다 반 고흐 미술관에서 너무 오래 관람을 하는 바람에 2시 쯤에 입장을 해서 5시 마감까지 3시간밖에 관람을 하지 못해서 모두 둘러보지 못했다. 흑 시간이 없는 바람에 유물(?)들 같아 보이는 것도 있었는데 흥미가 별로 없어서 그림만 겨우 다 돌아보았다.

이 미술관은 내가 방문했던 내셔널갤러리, 스코티쉬내셔널갤러리, 캘빈그로브아트갤러리 등과 배치나 구성이 비슷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 미술관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오디오 가이드가 무료라는 것! 이어폰만 있으면 어플을 다운 받아서 무료로 오디오 가이드를 이용할 수 있는데 무료임에도 불구하고 설명이 굉장히 좋았다. 설명 말고도 그 그림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효과음이 포함되어 있는 트랙도 많았다. 그리고 거의 기본 그림 하나 당 "그림에 대한 설명 + 부가적인 내용 + 박물관장 또는 역사학자 또는 작가 등이 그 그림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는 구성"으로 이루어져서 진짜 시간만 넉넉했다면 더 깊이 감상할 수 있었을텐데 시간의 한계로 모두 즐기지 못해서 아쉬웠다. 하지만 어플이니까 박물관 밖에서도 설명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그림과 마주하며 듣는 설명과 그냥 듣는 설명은 느낌이 다르잖아여.

그러나 가장 큰 단점은 한국어 버전이 없다는 것이다 ㅠㅠㅋㅋㅋㅋ 강제 영어 듣기 잼

​이 미술관의 슈퍼스타 램브란트, 그리고 그의 걸작 <야경꾼>
일단 규모와 크기가 주는 스펙타클함은 있었지만 그림의 복원을 위한 스캔 중이어서 그것을 완전히 느끼진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램브란트의 빛을 이용한 드라마틱한 연출, 그리고 섬세한 붓터치 모두 다 좋은데 그냥 돈 많은 상인들의 잘 꾸민 단체사진 같다는 감상을 벗어나기가 힘들어서 생각보다는 감흥이 덜했다. 또 다른 유명한 작품인 <유대인 신부>도 오디오 가이드에서는 굉장히 intimating한 느낌이 잘 드러난다고 하는데 그냥 내가 보기엔 웬 늙다리가 젊은 여자 가슴 만지고 있는데여... 하는 생각밖에는;; 램브란트와 나는 잘 안맞는걸로.

Winter Landscape with Ice Skaters, Hendrick Avercamp, c. 1608

핸드릭 아베르캠프의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이 있는 겨울 풍경> (이라고 번역해야 하나)
나는 피터르 브뤼헐(솔직히 이 화가는 다 좋은데 이름이 너무 어렵다. 피터르, 피테르, 피에테르도 복잡한데 브뤼헐, 브뤼헤, 브뤼허,브뤼겔ㅋㅋㅋㅋ Pieter Brueghel 어떻게 읽어야 하나여) 을 비롯한 그의 영향을 받은 16-17세기의 플랑드르 화가들의 그림을 정말 좋아한다.

깜찍하고 귀여우면서도 유머러스하고 또 한편으로는 시니컬한 그 빽빽한 그림이 정말 좋다. 서당이나 씨름판 풍경을 그린 김홍도의 풍속화처럼 위대한 사람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그린 그림을 자세히 들여보다보면 웃음이 절로 난다. 이 그림은
https://www.rijksmuseum.nl/en/rijksstudio/artists/hendrick-avercamp/objects#/SK-A-1718,0에서 자세히 감상할 수 있는데 멀리서 보면 겨울에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이라고 묶어서 얘기할 수 있겠지만 하나하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새로 사귄 커플인지 수줍게 손을 꼭 잡고 스케이트를 타는 커플, 막 스케이트를 신으려는 사람, 스케이트를 타다 넘어진 사람, 아이스하키 같은 놀이를 하는 사람들, 얼음을 깨서 물을 긷는 사람, 부자들, 얼음 위임에도 불구하고 그 옆에서 구걸하는 사람, 오두막집에 그려진 낙서, 새를 잡기 위한 덫, 그리고 심지어 당시의 화장실과 심지어 일을 보고 있는 중인(?!) 엉덩이까지 확인할 수 있다.

이게 17세기 그림인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스케이트를 타면서 생활을 영유했다는 것을 통해 왜 빙상 경기에서 네덜란드가 그렇게 강한건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ㅋㅋㅋ

그런데 이 화가가 조금 특별한 점은 이 사람은 선천적인 귀머거리였다는 점이다. 날 때부터 어떠한 소리도 들을 수 없는 사람. 그래서 이 사람의 그림이 수다스러울수록 그 풍경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렸을 화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이 화가는 특히 겨울 풍경을 많이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정확히 표현할 수는 없지만 뭔가 겨울은 공기의 밀도가 여름과는 확실히 다른 것 같다. 똑같이 재잘거리는 소리라도 여름 바닷가에서의 재잘거림과 겨울 빙판 위에서의 재잘거림은 다르게 느껴진다. 아마 이 화가도 ‘소리’라는 것을 듣지는 못했지만 그 미묘하게 다른 공기를 읽어낸 것은 아닐까 싶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화가가 그린 그림에서 겨울 속 사람들의 웅웅거리며 떠드는 소리와 스케이트가 얼음을 샥샥 긁고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신기하다.

A Flemish Kermis with a Performance of the Farce ‘Een cluyte van Plaeyerwater’, Peeter Baltens, c. 1570

위와 마찬가지로 피터르 브뤼헐과 비슷한 화풍의 화가 Peeter Baltens(뭐라고 읽어줘야 하나 피터르 발텐스?)의 그림인데 전체 그림은 여기서 확인 가능.

https://www.rijksmuseum.nl/en/search/objects?q=A+Flemish+Kermis+with+a+Performance+of+the+Farce&p=1&ps=12&st=Objects&ii=0#/SK-A-2554,0

시끌벅적하고 소란스러운 시장통의 모습이 재밌고 그 시절을 살던 사람들을 짐작해본다. 크크 뒤에서는 싸움을 하든가 말든가 손을 잡고 둥글게 둥글게 춤을 추는 사람들의 무심한 표정이 재밌어서 줌인.

The Milkmaid, Johannes Vermeer, c. 1660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로 엄청 유명한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우유를 따르는 여인>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도 너무 보고 싶지만 이 그림은 헤이그에 있어서 보진 못했다. 그러나 대신 그의 다른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우유를 따르는 여인>을 감상했다. 나는 그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고요함이 정말 좋다. 분명 인물화이고 우유를 따르고 있는 동작을 하는 중인데도 정물화 같은 고요함이 느껴진다. 아침에 새가 지저귀는 소리 약간과 우유를 쪼르륵 따르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가축들의 희미한 소리밖에 안 날 것 같은 그런 고요한 세계. 노란 옷과 파란 치마의 아름다운 색과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의 아름다움만이 존재하는 깊이감이 느껴지는 그 세계가 정말 좋았다.

July (‘Summer Luxuriance’), Jac van Looij, c. 1890 - c. 1910

자코버스 반 루이의 <7월>

닉네임도 썸머, 블로그 제목도 원썸머나잇인 썸머충인 나를 단숨에 사로잡은 꿈같은 7월의 풍경. 서서히 해가 지며 밤이 찾아올 듯한 시간, 찌르르 찌르르 풀벌레 소리가 들려오는 그 공간 속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습도. 그러나 이내 땀을 식혀주는 바람이 불어오며 서늘하게 느껴지는 온도감. 느껴본 듯 느껴보지 못한 듯 항상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여름밤의 아련한 그 풍경이 이 그림 속에 들어 있었다.

The Singel Bridge at the Paleisstraat in Amsterdam, George Hendrik Breitner, 1898

조지 핸드릭 브라이트너의 겨울의 암스테르담 풍경.

그런데 너무 바쁘게 지나가서 오히려 초점이 나가버린 여자의 모습이 인상적인 그림. 차갑고 음울한 색채의 겨울 풍경 속에서 서로 바쁘고 무심하게 지나쳐 버리는 사람들을 보며 새롭게 태동하는 ‘도시’라는 공간의 우울한 인상이 전해진다. 이 그림을 보고 있자니 파리와 우울한 사랑을 했던 보들레르가 떠올랐다. 그리고 내가 떠올린 시를 한 편 옮겨본다.

 

지나가는 여인에게

거리는 내 주위에서 귀가 멍멍하게 아우성치고 있었다.
갖춘 상복, 장중한 고통에 싸여, 후리후리하고 날씬한
여인이 지나갔다, 화사한 한 쪽 손으로
꽃무늬 주름장식 치맛자락을 살포시 들어 흔들며,

날렵하고 의젓하게, 조각 같은 그 다리로,
나는 마셨다, 얼빠진 사람처럼 경련하며,
태풍이 싹트는 창백한 하늘, 그녀의 눈에서
얼을 빼는 감미로움과 애를 태우는 쾌락을.

한 줄기 번갯불...... 그리고는 어둠! 그 눈길로 홀연
날 되살렸던, 종적 없는 미인이여,
영원에서 밖에서 나는 그대를 다시 보지 못하련가?

저 세상에서, 아득히 먼! 너무 늦게! 아마도 영영!
그대 사라지는 곳 내 모르고, 내 가는 곳 그대 알지 못하기에,
오 내가 사랑했었을 그대, 오 그것을 알고 있던 그대여!

[출처] 악의 꽃, 민음사, 황현산

​ 이 그림은 미술관 마감이 임박할 때쯤에 바쁘게 나가다가 본 그림이라 작가도 제목도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그냥 마치 돌체앤가바나 화보 같이 한껏 폼을 잡으며 나 지금 겁나 멋있지 하면서 부리부리한 눈빛을 보내고 있는 것이 웃겨서 찍어봤다. 아 정말 너무 치명적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특이하게 미술관 안에 도서관이 있고 실제로 이 곳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있었다. 맨 아래층에서부터 꼭대기 층까지 빼곡하게 차 있는 책들과 그 책들 사이를 오르내릴 수 있는 나선형의 계단이라니.. 마치 미녀와야수의 벨이 종횡무진 다녔던 그 책방의 확대버전 같았다. 이런 도서관을 이렇게 구경하거나 사진 한번 찍고 가는거 말고 근처에 두고 자주 다닐 수는 없는걸까. ㅠㅠ 우리 집 근처의 도서관을 생각하며 급 한숨.

그리고 나가는 길에 본 램브란트 야경꾼 속 인물을 레고로 만든 조형물. 귀여워어어 >.<​

​이 미술관이 있는 곳에 반 고흐 미술관, 현대미술관(MOCO), 시립 미술관 등이 다 모여있는데 각 뮤지엄들을 이어주는 정원과 공원, 그리고 그 속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도 그림 못지않게 아름다웠다. 그러나 시간 관계상 반고흐 뮤지엄과 국립미술관 두 곳밖에 가지 못해서 정말 아쉬웠다. 특히 MOCO는 밖에서 얼핏 봤을 때 건물도 흥미롭게 보였고 정원에 있던 Kaws의 조형물도 내 눈길을 끌었으나 한정된 시간이여 ㅠ_ㅠ 혹시 다음에 암스테르담에 갈 기회가 있다면 암스테르담의 현대 미술도 꼭 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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