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미술관은 내가 처음 가 본 한 작가만의 미술관이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정말 훌륭했다. 한국에서 ‘00전’ 이런 식으로 한 작가를 다루는 ‘전시회’는 여러 번 갔지만, 그때마다 정말 유명하고 그 작가의 진수라고 할 만한 작품은 한 두 장이고 나머지는 습작이나 스케치 혹은 어떨 때는 그 작가와 영향을 주고받은 다른 작가들의 그림이 더 많을 때도 있었기 때문에 딱히 큰 기대는 하지 않고 방문했던 미술관이었다.
그렇게 기대 없이 들어갔는데 아니 이게 웬걸. 일단 고흐의 작품 자체가 너무 유명하니까 나같이 미술에 큰 조예가 없는 사람도 아는 작품이 많은데 그 수많은 유명한 작품이 쉴 새 없이 쏟아질 정도로 미술관이 소장한 그림들이 많고 대단했다. 여러 유명한 미술관들(ex. 내셔널갤러리, 오랑주리, 프라도미술관 등)에 갔을 때 한두 작품씩 만났던 그의 작품들이 초기부터 후기까지 전 생애에 걸쳐 한 미술관 전체를 이루고 있는 것을 관람하는 것은 정말 황홀함 그 자체였다.
위에서 언급한 유명한 미술관뿐 아니라 심지어 B 대학 미술관에 갔을 때마저도 고흐 작품이 하나씩이라도 없는 곳이 없었는데 뉘넨지역에서 백몇 장, 파리에서 200여 장, 아를, 생 레미 정신병원, 오베르 등지에서 2~300여 장의 작품을 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왜 그렇게 많은 미술관이 고흐의 그림을 최소 한 장씩이라도 보유할 수 있었는지 납득할 수 있었고 고흐는 정말 대단한 열정의 화가였다는 사실을 방대한 전시 규모를 통해 다시금 직접 느낄 수 있었다.
가장 좋았던 점은 바로 오디오 가이드. 나름 미술관 관람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미술에 대해 엄청 잘 아는 것도 아니라서 늘 미술관을 관람할 때는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해서 듣는데 내가 지금까지 사용했던 모든 오디오 가이드들 중에서 이 곳이 가장 좋았다. (현대에서 후원했는지 오디오가이드 빌리는 곳에 현대 마크 있던데 당신들 칭찬해.....b) 그림에 대한 설명이 좋았던 것은 물론이며 고흐의 삶이나 당시 사조에 대해 자세히 안내해주어 그림을 더욱 깊이 감상할 수 있었다. 또 액정을 터치하는 방식이라 단순히 ‘오디오’에 머물지 않고 고흐가 이 작품에 사용한 색을 직접 조합해보는 등 관람객이 직접 체험할 만한 여지가 있었던 점이 정말 좋았다. 그리고 목소리가 굉장히 좋은 성우분이 고흐가 생전에 했던 말을 해주는데 톤이 너무 좋으셔서 약간 예수님 말씀처럼 들렸다.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완벽한 듯한 오디오 가이드에 한 가지만 지적하자면 ,몇 가지 단어를 표준발음법에 어긋나게 발음한 것이 생각보다 꽤 거슬렸다. 특히 ‘물감’을 자꾸 [물깜]이 아니라 [물감]이라고 발음한 것과 ‘농부가 낫을 들고 간다’라고 할 때 ‘낫을’을 [나슬]이라고 발음하지 않고 [나츨]이라고 해서 약간 괴로웠다. 이런 것까지 신경 써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직업병입니다. 지나가세요)
여기서부턴 많은 그의 작품들 중 나를 사로잡은 그림들에 대한 생각.

1. 그의 작품들을 전부 관람하면서 나는 그의 예술에 대한 생각이 그의 초기작부터 후기작까지 쭉 관통하고 있다고 느꼈다. ‘묘사(혹은 모방)보다는 감정(내면)의 표현을 위한 예술’이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많은 자화상을 보며 그가 어떻게 그의 내면을 표현하려고 했는지가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고흐는 자신을 수없이 그리면서 어떤 감정을 가졌을까.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나’, ‘거울 속에 비친 나’ ‘도화지 위에 내가 표현한(그린) 나’. 진짜 ‘나’의 본질에 가까운 것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2. <오두막집>에서 빛나던 희미한 난로 불빛, <감자 먹는 사람들>의 거칠지만 단단해 보이는 손.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라는 영화 속 찰리의 가족들이 생각나기도 했다. 고흐는 확실히 noble보다는 humble을 추구했던 것 같다. 당시를 살아가던 소작농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이상화하지 않으면서도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표현하려고 했던 그의 노력과 그 사람들에 대한 따스한 시선이 좋았다. 그렇지만 ‘가난하지만 순박하다.’ ‘가난하지만 행복하다’와 같은 이러한 명제들이 진짜 그들의 삶과 가난을 이상화해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진짜 그들의 본질을 포착하여 표현한다는 것은 어떤 형태가 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3. “너는 내 그림을 통해 내가 나만의 관점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될 거다”라는 고흐의 목소리와 함께 관람했던, 새로 알게 된 그의 작품 <장미와 딱정벌레>
이 그림은 ‘장미’를 그렸지만 실제로는 ‘딱정벌레’에 더 눈길이 가게 그린 점이 좋았다. 장미는 영국 왕실의 꽃이기도 하고 화려함 그 자체이다. 누구나 그 화려함에 눈길이 갈 것이다. 그러나 그 꽃을 자세히 들여다보았을 때 비로소 그 꽃 위에서 사는 별 것 아닌 작은 벌레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벌레도 나름의 아름다움과 이유를 가지고 그곳에 존재한다. 작은 것들을 위한 시. 작은 것들을 눈에 담은 고흐의 그 시선이 다시 한번 좋았다.

4. 내가 가장 사랑하는 그의 작품 <아몬드 꽃>
왜 나는 이 작품을 가장 사랑할까? 그냥 아몬드 꽃이 주는 색의 느낌이 마음에 드는 걸까. 아니면 조카의 탄생을 축하하며 그렸다는 이 그림과 관련된 일화가 나에게 감동을 주는 걸까. 따뜻한 하늘색에 부드러운 크림색 꽃 그리고 검은색과 푸른색으로 표현된 힘찬 가지가 시작의 생동감과 탄생의 기쁨, 아름다움 그리고 그 순간의 벅차오름을 너무 잘 표현한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그림을 보며 ‘감동적임’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경우는 드문데 이 그림은 언제나 내게 감동을 준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이 그림을 보고 사랑에 빠져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설정한 적도 있었는데 이 그림을 실제로 만나게 되어 정말 기뻤고 그래서인지 살짝 눈물이 고였다.

5. <Wheat Field with Reaper> (밀밭과 수확하는 사람?) 뭐라고 번역해야 하지
몇 년 전부터 나는 ‘무슨 일을 하든지 묵묵히 자기 일을 담담하게 해 나가는 직업인’의 이미지에 대해 꾸준히 생각해 왔고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을 존경해 왔다. 그리고 이 그림을 마주했을 때, 이 그림 속에 녹아난 색깔이나 터벅터벅 낫을 들고 걸어가는 농부의 모습에서 내가 꾸준히 생각해오던 그 담담함과 따스함이 느껴져서 좋았다. 그리고 이 담담함은 고흐가 이 그림에 대해 했던 말과 중첩되면서 단순히 자기 일을 담담히 해 나가는 것 이상으로 누구나 최종적으로 도착해야 하는 목적지인 죽음을 향해 목을 내밀고 있는 황금빛 밀 이삭의 담담함마저 너무 따스하게 느껴졌다. ‘아몬드꽃’이 생명이라면 ‘밀밭’은 죽음일지라도 아몬드꽃 이상으로 눈이 부셔서 마음을 울렸던 작품이었다.
In that reaper, I saw the image of death, in the sense that the corn represents mankind being reaped. However that It was a death figure almost with a smile. 농부에게서 나는 죽음의 이미지를 발견한다. 그가 베어들이는 밀이 바로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의미에서다. 그러나 이 죽음 속에 슬픔은 없다. 모든 것은 순수한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태양과 함께 죽음의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고흐가 생전에 편지를 많이 쓴 건 알았지만, 단순히 테오야 형이 요즘 많이 힘들어 잉잉ㅠㅠ 이런 내용일 거라고 생각했다; 진짜 빈센트님 죄송합니다. 편지는 내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이 그의 예술관과 신념에 관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이런 수많은 편지를 그냥 전시해 두는 게 아니라 약간 옛날 전화기(전보?)처럼 생긴 스피커를 귀에 대면 성우가 그 편지를 직접 읽어주는 것을 들을 수 있는데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 안부를 묻고 전하는 내용을 생생한 목소리로 들으니까 반 고흐라는 사람이 신화나 이야기 속 인물이 아니라 실제 존재했던 사람이구나 싶으면서 어떻게 보면 불우하기도 했던 그의 생애가 더 찡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정말 그는 열정적인 사람, 노력하는 사람, 예술이라는 불꽃에 앞뒤 재지 않고 뛰어들었던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고흐의 편지와 더불어 고흐의 절친이었던 에밀 버나드가 고흐의 장례식 풍경에 대해 친구 알베르 오리에에게 보낸 편지가 내 마음에 오래 남는다.
At three o'clock his body was moved, friends of his carrying it to the hearse, a number of people in the company were in tears. Theodore Van Gogh who was devoted to his brother, who had always supported him in his struggle to support himself from his art was sobbing pitifully the whole time…
The sun was terribly hot outside. We climbed the hill outside Auvers talking about him, about the daring impulse he had given to art, of the great projects he was always thinking about, and of the good he had done to all of us.
We reached the cemetery, a small new cemetery strewn with new tombstones. It is on the little hill above the fields that were ripe for harvest under the wide blue sky that he would still have loved…perhaps.
Then he was lowered into the grave…
이렇게 여운이 남는 전시 관람은 참 오랜만이었다. 여운을 갈무리하지 못하고 그에 대해 자꾸 되짚게 된다. 위대한 사람은 이렇게나 큰 울림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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