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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이의 눈으로 보는 세상

내게 '파리'는 어떤 도시인가요

by 썸머Summer 2019. 9. 30.

내게 '파리'는 어떤 도시인가.

워낙 유명한 도시지만 내가 읽고 보고 자란 책이나 영화가 주로 영미권의 것들이다보니 '파리'라는 도시는 내게 구체적인 이미지는 없이 그저 낭만, 예술, 패션 등의 뜬구름 같은 개념으로만 존재하는 도시였다.

 

그러다 몇년 전 엄마와 단둘이 떠나는 첫 해외여행으로 파리, 런던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친구들과 해외여행은 몇 번 다녀왔었지만 그때마다 나보다 더 여행 경험이 풍부한 친구들에게 많이 의존했는데 이번엔 내가 엄마를 책임져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로 도서관에서 여행 관련 책을 잔뜩 빌려와 읽으며 열심히 계획을 짰었다.
그리고 비행기표, 숙소, 일일 투어 등 예약할 수 있는 것들은 거의 다 예약을 했을 무렵 엄마가 미끌어져 넘어져서 크게 다치는 바람에 수술까지 받게 되었다. 여행까지는 몇 달 남아있긴 했지만 수술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무리하게 다리를 쓰면 안될 거라고 판단하고 여행을 취소하자는 결정을 내렸다. 취소가 안 되는 대신 저렴하게 예약할 수 있는 옵션을 많이 선택했던 터라 취소 수수료만 거의 백 만원이 넘게 나왔던 것 같다. 그때 예약을 취소하면서 (엄마가 다친 게 엄마 잘못이 아니니까) 엄마를 원망하는 마음은 전혀 없었지만 그냥 왠지 서러워졌었다. 돈이 아까운 게 아니었다. 수술 후 회복을 위해 입원해 있으며 나에게 미안해 하는 엄마에게 , 여행은 다음에 가면 되지 뭐 ㅋㅋ 괜찮아~~’ 하고 말 하는 것자체가 그냥 다 서러웠다. 엄마가 나한테 미안해 하는 것도 싫었고 진짜 안될 놈은 어떻게 해도 안 된다는건지 되게 오랫동안 돈도 모으고 겨우 장기간 여행을 갈 수 있는 짬도 생겼었는데 그게 그냥 허무하게 취소 되었다는게 서러웠다.
또 그때만 하더라도 왠지 이번 기회를 놓치면 엄마와의 유럽여행은 영영 사라져버릴 것 같았다.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하다 보면 정말 향후 최소 10년 정도는 못 가는 것 아닐까 하면서 뭔가 초조해졌었다. 내 친구들은 엄마랑 유럽여행 최소 한번씩은 다 다녀왔는데 나는 우리 엄마랑 단 둘이서 평생 유럽 한 번 못 가보는 것 아닌가 하는 그런 초조함. 그렇지만 정말 인생은 알 수 없다고 그런 서러움을 느낀 것이 우습게도 몇 년 뒤 난 영국에 살게 되고 엄마는 우리 집에 약 3개월 동안 머물며 둘이서 신나게 유럽을 함께 여행했다.
그래도 이상하게 내게 파리하면 그때 예약을 하나하나 취소하던 서러운 겨울날이 함께 떠오른다.

 

이번은 나의 두 번째 파리 방문이다.

올해 4월에 파리에 왔었는데 그때는 프랑스 남부 여행에 좀 더 방점이 찍혀있기도 했고, 어려운 분들을 모시고 다녔던 여행이라 파리는… 정말 그저 그랬다
관광객들이 다들 간다는 에펠탑, 개선문, 샹젤리제 거리, 몽마르뜨언덕, 세느강유람선 정도만 방문하기도 했고 또 어른들을 모시고 다니느라 온통 신경이 거기에 가 있어서 오롯이 도시를 느끼지 못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렇지만 어른들을 모시고 여행한 상황은 똑같은데 프랑스 남부의 아름다운 마을들은 정말 좋았던 것을 생각하면 파리는 그에 비해 내겐 매력이 별로 없는 도시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본다. 하루 이틀 만에 다 볼 수 없는 대도시와 하루 이틀이면 거진 다 돌 수 있는 작은 마을을 비교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긴 하지만.

 

그리고 파리 사람들의 쌀쌀맞음도 내겐 큰 벽으로 다가온다. 내가 접할 수 있는 사람이라 해 봤자 매표소 직원, 식당 웨이터, 호텔리어 등 서비스 군에 종사하는 일부 사람들이지만 런던이랑만 비교해보더라도 파리 사람들은 쌀쌀맞은 것 같다. 영국 사람들이 앞에선 웃으면서 뒤에선 호박씨 까는 사람들이라는 세간의 평이 있다지만 적어도 앞에서라도 친절한 게 낫지 않나. 물론 프랑스어를 전혀 못한다는 나의 언어의 한계 때문에 더 쌀쌀맞게 느껴지는 것도 있겠지.

 

그럼에도 나는 파리에 또 왔다.
그것도 내 인생의 첫 번째 혼자여행이라는 나름 의미 있는 여행의 목적지로 파리를 선택했다. 우선 다른 이유보다 저번에 파리에 왔을 때, 어른들이 힘들어하시는 것 같아 루브르, 오르세처럼 규모가 큰 곳은 못 가고 오랑주리만 방문해  꽤 아쉬웠기 때문에 이번엔 다 제쳐두고 루브르, 오르세, 퐁피두 그리고 로댕미술관까지 딱 미술관들만 보겠다는 생각으로 파리를 여행지로 선택했다.

 

그리고 대학교 교양 수업으로 들었던 서양미술사과목의 교수님이 파리에 가시면 미술관에서만 몇 날 며칠을 보내고 오신다는 이야기가 나에겐 아직까지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몇 백 만원의 비행기 표를 사서 무려 파리까지 갔는데 미술관에만 시간을 할애한다는 것이 지금 생각하면 서양미술사전공 교수님으로서는 너무 자연스러운 행동이고 또 미술을 좋아한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만 촌스러운 대학생이었던 그 당시의 나에겐 뭐랄까 그런 여행의 시간들이 최고로 사치스러운 시간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아직까지 그런 촌스러운 생각이 남아 있는지 혼자 여행을 떠나보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 나에게도 그런 시간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오페라 역에 도착하자마자 수많은 중국인 관광객들의 인파에 갑자기 모나리자 앞에 우르르 몰린 사람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면서 나의 여행이 살짝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최대한 나와 작품과의 의미있는 만남의 시간을 보내다 돌아가고 싶다. 

 

내가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 내렸을 때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빗방울이 거센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고 있었다. ‘낭만의 도시라는 별명이 우습게도 파리에서는 서울역 광장 같은 데서 나는 냄새가 났다. 매연, 담배 냄새, 노숙자들의 쉰내 같은 것이 엉켜 있는 불쾌한 냄새. 버스는 낡았는지 덜컹거리다 못해 쨍그랑거려 버스가 이러다 부서지는 것이 아닐까 불안했다.

 

https://youtu.be/F8wI5ZosdRA

 

나는 RM 노래 <SEOUL>을 정말 좋아한다. 나도 어디 가서 서울사랑으로는 안 지는데 알엠도 정말 지독하게 서울을 사랑하는 사람인 것 같아서 이 노래가 더욱 좋다. 특히 너무 인정하기 싫지만 이미  너의 매연과  역겨움까지도 사랑해 청계천의 비린  사랑해 선유도의 쓸쓸함을 사랑해 돈만 있으면 살기 좋다던 어느 택시기사의 한숨까지도  부분 가사는 들을 때마다 뭔가 벅차오르기까지 한다

 

 노래를 들으며 버스에 타고 있으려니 불쾌한 냄새와 소음들도 파리라는 도시의 일부처럼 느껴져  도시에 대해   너그러워졌다. 내게 '파리'는 어떤 도시인가로 시작한 글을 썼지만 아직도 뭐라고 똑부러지게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이 도시 어딘가에서 파리패션위크를 맞이해 열리고 있을 화려한 쇼와 호화스러운 에프터파티도,  알제리 출신의, 형은 런던에서 택시를 몰고 자신은 파리에서 택시를 몰아 자신 택시드라이버 집안이라는, 파리 시내와 공항까지의 고정요금제가 불합리하다는 파리 택시기사의 한숨까지 이 모든 것이 전부 파리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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