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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이의 눈으로 보는 세상

덴마크 코펜하겐 여행 (3) 로젠보르크성, 뉘하운, 로얄코펜하겐, 왕립도서관

by 썸머Summer 2019. 10. 11.

여정에 따라 정리한 나의 코펜하겐 여행기 :)

 

로젠보르크성


나는 을 구경하는 것에 큰 흥미가 없다. 그나마 제일 흥미롭고 인상 깊게 구경했던 것이 경복궁이려나. 유럽 여행을 다니면서 갖가지 화려한 성들을 많이 봤지만, 귀족이나 왕족들이 생활했던 공간은 딱히 내 눈길을 끌지 않았다. 오히려 서민들이 생활하고 다녔던 곳이 더 흥미로웠다면 흥미로웠지 귀족들의 공간은 삶의 흔적이 느껴지기보다는 그저 기능적인, 죽어버린 공간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원래는 로젠보르크 성도 갈 예정이 없었다. 대신 코펜하겐 국립 미술관에 가려고 했는데 바보같이 휴관 날을 제대로 알아보지 않아서 계획이 흐트러지는 바람에 로젠보르크 성에 방문하였다.

그런데 의외로 나쁘지는 않았다. 특히 덴마크 역사에 대해 잘 몰랐는데 이 성에서 역대 덴마크 왕들이 살아서 성 자체가 하나의 역사박물관처럼 꾸며져 있었다. 그래서 성을 구경하는 것과 동시에 덴마크의 왕실 역사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배울 수 있었다.

중간에 왕의 화장실도 있었는데 지금은 사용을 안 한다는 것을 아는데도 나도 모르게 코를 막고 들어갔다.ㅋㅋㅋㅋ 그리고 칼스버그 맥주에도 그려져 있고 대외적으로 덴마크의 상징으로 많이 쓰이는 덴마크 왕가의 왕관을 보았는데 정말 세상 화려한 것이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라는 말이 절로 생각났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궁전의 화려한 보물들 사이에서 가장 내 눈에 띄었던 것은 프레데리크 7세 때 전제정치에서 입헌군주제로 바꾼다는 내용의 문서에 서명했던 펜이었다

로젠보르크 성의 왕좌, 사자가 지키고 있다.

 

뉘하운 운하  


로젠보르크 성을 관람한 후 뉘하운으로 향했다. 코펜하겐 하면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로 등장하는 바로 그 항구가 바로 이곳이다. 이곳은 알록달록한 색깔의 아기자기한 집들이 동화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내게 뉘하운은 마냥 행복한 동화 속 마을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아마 그 이유로는 일단 영화 데니쉬걸의 인상 때문일 것이다.

데니쉬걸은 영화 제목처럼 덴마크 여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여자는 최초로 성전환 수술을 한 화가 릴리 엘베’(에이나르 베게너). 나의 생물학적 성과 내 영혼의 성이 달라 겪게 되는 갈등, 혼란의 감정을 섬세하게 다룬 영화였는데 혼란 속에서 주인공이 느낀 음울한 감정 그러나 자신의 성 정체성을 새롭게 깨달아 느끼는 희미한 흥분감이 차갑고 축축한 코펜하겐의 풍경, 그중 뉘하운의 풍경으로 잘 표현된 것 같았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뉘하운에 꼭 한번 와 보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 내가 방문한 날 날씨가 흐려서, 내가 상상했던 그 느낌 그대로의 뉘하운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뉘하운은 덴마크의 자랑, 동화작가 안데르센이 살았던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안데르센의 동화는 내게 대부분 슬프고 때론 그로테스크하게도 느껴지는데 그 동화가 흐리고 쌀쌀한 뉘하운과 닮아있는 것 같았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코트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은 채 머릿속으로 거품이 된 인어공주, 다 타버린 성냥 옆에서 잠든 소녀, 주변 사람들에게 따돌림당하던 미운 오리, 화형대로 향하면서도 가시 돋친 쐐기풀로 옷을 짜는 것을 멈추지 않았던 소녀에 대해 생각하며 뉘하운 운하를 거닐던 안데르센을 가만히 떠올려 보았다.

흐린 날씨와도 잘 어울리던 뉘하운 운하 

​(+) 근데 뉘하운에서 투어 보트를 탔을 때 가이드분이 자꾸 크리스챤 앤덜슨~이러면서 뭐라고 설명해 줬던 내용이 알고 보니 안데르센에 관한 내용이었다는 것은 보트에서 내릴 때쯤 깨달았다. ㅋㅋㅋㅋㅋㅋㅋ 

 

로얄코펜하겐


이곳에 앉아 사진에 보이는 저 붓으로 로얄코펜하겐 그릇 특유의 무늬를 손으로 그린다. 

그릇을 잘 모르는 나도 알고 있는 로얄코펜하겐!
일단 그릇 자체가 그냥 보기에도 예쁘지만 (특히 블루플루티드 풀레이스 찻잔에 밀크티 마신다고 생각하면 넘 고급진 그 느낌!)  ‘로얄’(로열보다 로얄이어야 함)이라는 단어와 코펜하겐이라는 단어가 만나서 이름부터 나의 물욕을 마구 자극하는 그릇이다.

그래서 코펜하겐의 중심 거리라는 스트뢰에 거리에 있는 로얄코펜하겐 가게에 방문했다. 예쁜 찻잔을 보고 코펜하겐까지 왔으니 기념으로 사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왠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사는 게 더 쌌다. 아마 물가 때문인가..? 그릇이면 나름 운송료도 붙었을텐데 한국이 더 싸다니. 굳이 덴마크에서 영국으로, 영국에서 다시 한국으로 힘들게 가져가느니 그냥 다음에 한국에 돌아가서 사기로 했다ㅋㅋㅋㅋㅋ
(근데 이상하게 검색해보면 한국이 뭔가 원산지(?)보다 항상 저렴하다.  보덤 프렌치 프레스도 사려다가 한국이 더 싸서 또 한국 돌아가서 사기로 하고ㅋㅋ 왜지? =_= 물가를 고려해도 관세+운송비 붙었을텐데도 더 싸다니...)

 

코펜하겐 왕립도서관


밖에서 보면 까맣게 빛나는 모양이라 '블랙다이아몬드'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는 신관 
신관과 느낌이 완전히 다른 구관의 모습. 완전 실내까진 들어가지 않고, 조모임도 하고 공부도 하는 공간을 촬영했다.

나의 코펜하겐 마지막 여정은 왕립도서관이었다. 기존에 있던 건물에 현대식 건물을 이어서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멋진 건물로 탄생한 이곳은 현재 코펜하겐 대학교 도서관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현대식 신관은 바로 운하 옆에 위치해 1층부터 꼭대기 층까지 전면을 통유리로 제작해 운하가 멋지게 보이는 것은 물론이며 시원하고 탁 트인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구관은 왕립도서관 건물다운 기품이 느껴졌다. 화장실이 가고 싶어서 이용했는데 화장실조차 뭔가 오랜 역사가 있는 고급 호텔 화장실 같은 느낌이었다. ㅋㅋㅋ  그리고 코펜하겐 대학교 도서관으로 이용되어서 그런지 많은 대학생이 조모임을 하거나 각자의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19세기 느낌의 앤틱한 건물 속에서 맥북을 가지고 연구 활동을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예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약간 민폐가 될 것 같아서 운하가 보이는 도서관 카페에서 한참 동안 책을 읽고 나왔다. :)

도서관은 공짜로 시민들에게 지식과 문화를 영유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가히 시민사회의 최고의 선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난 기회가 되면 여행지에서 잠깐이라도 도서관에 들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도서관의 품격은 그 도시의 품격을 말해주는 것 같다. 장서의 규모나 서비스 같은 디테일한 점은 파악하진 못해도 일단 공간적으로 이렇게 멋진 도서관을 보니 코펜하겐이 왜 매력적인 도시인지를 알 것 같았다. 내가 한국에서 살았던 도시에도 나름 멋진 도서관이 있다. 놀 곳 없는 노잼시티라서 그런지 주말만 되면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을 방문 하는 사람들로 넘쳐나는데, 이용자 대비 도서관이 작아서 늘 붐비고 책을 읽을 만한 자리도 협소해서 얼른 새로운 도서관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코펜하겐에 있는 이곳처럼 멋진 공간이면 더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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