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실 ‘독일’이라는 나라를 여행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었다. ‘독일’하면 위대한 문학가와 철학자의 나라이며 세계사 특히 근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영향력이 큰 나라라는 것을 알지만 어디로 여행을 떠나고 싶냐고 물어봤을 때 한번도 독일에 가고 싶다고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베를린에 여행을 갔다 온 언니가 베를린에는 정말 독특한 이 도시만의 무드가 있다고, 혼자 여행을 하고 싶다면 꼭 베를린에 가보라고 추천해주면서 내 마음속에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처음 들어왔다. 그전에 내게 베를린은 내가 영화관에서 보다가 숙면을 취한 몇 안되는 영화 중 하나 정도였다고나 할까. (이번 베를린 여행을 준비하며 다시 한 번 이 영화를 봤는데, 내가 왜 잠들었는지 너무 잘 알겠더라. 대사 전달력 어쩔거야. 대사가 들려야 무슨 내용인줄 알죠. 한국 영화에도 자막 깔든지 딕션 연습 좀 하든지. 안 그래도 한국영화 볼 때 딕션 나쁜 배우들 때문에 가끔 짜증나는데 한석규를 제외한 대다수 인물들이 다 북한사람이라 어설픈 북한 사투리까지 가미되니... 또 눈을 감고 잠들고 싶었다 정말.)
그런데 마음에 이 도시가 들어와서 그런지, 그 언니가 추천한 뒤부터 이상하게 내 주변에 베를린을 방문한 사람들이 생겼고 그들이 모두 공통적으로 베를린 너무 좋다, 뭔가 힙한 도시다며 이 도시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도 와보았다. 어설프지만 나도 힙-한 분위기 즐겨보고 싶다는 생각에. 파리, 런던 이런 곳이 홍대입구라면 베를린은 성수동쯤일 것 같아서.
일단 베를린 여행 내내 내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내 지인들이 갔던 곳을 내가 못 가서 그럴 수도 있지만 내게 베를린이라는 도시는 조금 지루하게 다가왔다. 아마 가장 큰 이유는 건물들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왜 이렇게 네모 반듯한 창문들을 좋아하는건지. 도시 곳곳에 네모네모한 창문들이 빼곡한 네모네모한 건물들이 많이 보이는데 좀 더 미감을 살릴 수는 없었을까. 실용적이고 공학적인 설계를 중요시해서 그런걸까. (건축도 공학도 잘 몰라서 네모네모 건물이 실용적이며 공학적인지는 잘 모름=_=)
베를린도 큰 도시가 으레 그렇듯 강을 끼고 있다. 파리 센 강에 놓인 다리는 그 하나하나가 다 예뻐서 그저 강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그런데 내가 며칠 동안 만난 베를린의 다리는 정말 ‘이쪽 편과 강 건너 편을 연결해 사람들이 건널 수 있도록 해주는 구조물’이라는 기능에 충실한 다리였다. 말 그대로 그냥 다리. 다리에 이것 말고 다른게 더 필요해?하고 오히려 다리가 나한테 묻는 느낌이었다. ㅋㅋㅋㅋ 이런게 우리가 흔히들 생각하는 전형적인 독일인의 특성인가.
유럽의 도시들은 광장도 많고 강을 낀 도시엔 다리도 많아서 거리의 뮤지션들이 활동할 만한 공간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관광객이 많은 도시에선 쉽게 거리의 악사들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그 음악들은 나를 지나쳐가기도 하지만 어쩔 땐 마음속에 남아 그 도시와 함께 오래 기억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베를린에서는 이런 거리의 악사들을 보기가 어려웠다. 딱 한번 본 건 전철 안에서 공연하고 관람비를 받는 연주자들이었다. 적막하고 딱딱한 전철에서 힘겹게 흥을 띄워보려는 그들을 차마 보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그냥 이 돈을 받고 떠나주세요... 이런 느낌. 그래서 그런지 도시 전체가 조금 고요하게 느껴졌다. 나름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을 기념하는 축제 기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는 곳에 가도 뭔가 흥성함이 적은 느낌이었다.
한편, 도시 전체가 하나의 기념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아마 분단과 통일이라는 격동의 역사를 비교적 얼마 전에 겪어낸 도시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도시 곳곳에 남아있는 베를린 장벽들도 그렇고 이제는 베를린 제 1의 관광명소가 된 ‘체크포인트 찰리’라는 구 동독과 서독을 나누던 국경초소까지 거대한 역사 박물관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제 1차 세계대전, 제 2차 세계대전의 엄청난 폭풍 속에서, 어떤 의미로든 간에 중심에 있었던 나라가 독일이었고 그 나라의 수도가 바로 이곳 베를린이었기 때문인지 다양한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공간이 많아 도시 전체가 한편 추모공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전쟁에서 희생된 군인들을 기리는 공간, 홀로코스트를 당한 유대인을 기리는 공간, 심지어 불타버린 책을 기리는(?) 곳도 있었다.)
잠깐 그 불타버린 책들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이는 베를린 분서에 대한 이야기로 정권을 잡은 히틀러의 나치당이 독일 최고의 명문대라고 불리어도 손색이 없는 ‘훔볼트 대학’의 도서관 있던, 그들의 기준에서 ‘불온서적’인 책들을 전부 불태워버린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맑스, 루터, 에밀졸라, 카프카 등의 책을 비롯한 약 1만 8000여권이 불에 타 소멸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 훔볼트 대학 맞은편에 있는 광장 바닥에 이 책들을 기리는 의미로 빈 책장이 전시되어있고 ‘하인리히 하이네’의 글이 새겨져있다. “이것은 서막일 뿐이다. 책을 불태우는 곳에서는 결국 인간도 불태운다.” 하인리히 하이네는 이 말을 1820년에 했다고 한다. 그리고 분서는 1933년에 일어났다. 그리고 정말 하인리히 하이네가 예측한대로 1933년 나치당 집권 이후부터 대학살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말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나는 가이드와 함께 오전 워킹 투어를 했었는데 투어를 마무리하며 그 가이드가 이런 말을 했다. 베를린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게 되는 모든 나이든 사람들은 살아있는 역사 그 자체라고. 그들은 세계 대전을 겪었으며, 나치의 흥망을 지켜봤고, 분단과 통일을 모두 겪은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살아있는 역사가 아무렇지 않은 듯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그만큼 매력적이고 흥미롭다는 내용이었다.
나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방법 중 하나가 타자를 통해서라더니, 가이드의 그 얘기를 듣자마자 우리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우리 할아버지도 일제 시대의 식민지국민으로 태어나 한국전쟁에 참전했으며 광주 분이셔서 광주민주항쟁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격동의 근현대사를 살아낸 사람 중 한 명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베를린을 통해 역으로 우리나라가 나한테 새롭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또 주변 지인들에게 베를린이 특유의 무드가 있다, 힙-한 동네다는 얘기를 들어서 그런 카페나 책방 같은 곳을 몇 군데 가보았다. 뭔가 무슨 느낌으로 그렇게 얘기를 했는지 알 것 같긴 했다. 그런데 공간이 그리 크지 않은 카페나 책방에서 자꾸 한국인 여행객들을 마주쳤다. 난 평소 여행지에서 한국인을 만나는 것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는 편이다. 그런데 너무 작은 책방에 주인을 제외한 모든 손님이 한국인일 때는 뭔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 그런 느낌적인 느낌....? 아마 그 책방이 정유미 에코백으로 유명한 곳이라서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나를 포함해 그 책방에 있는 모두는 에코백을 하나씩 구입했다. 에코백 사려고 간건 맞는데 이상하게 뻘쭘해서 책도 한 권 샀다ㅋㅋㅋㅋㅋㅋㅋ나도 한국어로 베를린 힙플레이스라고 검색을 한 뒤 그 정보를 보고 찾아갔으니 카페나 책방에서 한국인들을 마주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왠지 머쓱했고 이미 '힙플레이스'라고 검색한 순간 내가 힙- 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한 도시에 대해 다 알기엔 너무 짧은 시간인 3박 4일이기도 했고, 컨디션 또한 좋지 않아서 제대로 이 도시에 대해 느끼진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미 내 귀에까지 이 도시가 힙-하다는 소문이 들렸으면 이 도시는 이제 더 이상 힙한 것은 아닌 것 같지만ㅋㅋㅋㅋㅋ 그래도 분열을 극복하고 이제는 화합과 포용의 상징으로 거듭나려는 이 도시를 더 흠뻑 못 느낀 것이 정말 아쉽다. 살면서 한번 쯤은 더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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