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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이의 눈으로 보는 세상

포르투, 영원히 영원히

by 썸머Summer 2023. 7. 9.

포르투는 과거에는 꽤나 큰 항구 도시였으나 지금은 그리 번화하지 않은 조용한 인상을 주는 도시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도시가 정말로 좋았다. '반드시 가봐야 할 곳', '반드시 해야하는 것' '반드시 먹어야 하는 음식' 이런 must 들이 많이 있는 여행 장소는 분명 여행으로 가는건데도 수많은 must들을 다 하겠다는 나의 넘치는 의욕과 그것을 다 포용하지 못하는 나의 제한된 시간과 경제력에 어떤 must들을 할 것인지 선택하는 작업에 여행을 가기도 전에 벌써 머리가 지끈거려 온다. 물론 이런 여행의 준비 과정을 즐기는 사람도 많겠지만 게으른 나에겐 벅차게 느껴지는 작업이다. 또 여행을 가서도 새벽부터 밤까지 의욕적으로 짜놓은 스케쥴을 소화하느라 체력이 남아나지 않아 즐거운 기분보다 피곤함이 더 커질 때도 종종 있었다. 그래서 내가 아직까지 파리 여행을 망설이고 있는 것일지도.

물론 포르투갈도 깊이 알면 알수록 가야하고, 해야하고, 먹어야 하는 멋진 것들이 많은 나라이겠지만 이 나라에 대한 나의 무지와 부족한 정보탓에 조금은 그 must의 부담을 덜어낼 수 있어서 의욕은 많으나 게으르고 체력이 부족한 나에게 포르투갈, 특히 포르투는 나에게 정말 적합한 도시였다. 아줄레주가 아름다운 성당들, 렐루서점, 전망대, 광장, 와이너리 정도만 둘러봐도 부족함 없이 느껴지고, 또 전부 걸어다닐 만한 거리에 모여있는 작은 도시라 그곳들을 다 둘러보아도 여유 시간이 충분히 남았다. 그 남는 시간을 그냥 하염없이 걸어 다니는 것에 사용했고 멍하게 강을 바라보는 것에 허비했다. 그렇다, 허비했다. '반드시'가 주는 부담감에서 해방되어 시간을 헛되이 사용하는 것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그래서 그런지 포르투에서 유독 혼자 여행하는 한국 여자들을 많이 보았다. 아마 치안도 어느정도 안전하면서 혼자만의 생각에 푹 잠길 수 있는 시간을 넉넉하게 주는 이 도시 덕분인 것 같았다. 그들도 나처럼 그렇게 커피를 마시며,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으며 혼자의 시간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12월의 포르투는 화려하고 떠들썩하기보다는 고즈넉하고 고요한 분위기였다.

확실히 우리나라보다 위도상 남쪽은 남쪽인지라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살을 에는 듯한, 뭔가 생존을 위협받는 한국의 무서운 추위가 아니라 폭삭한 코트와 목도리 정도면 견딜만한, 겨울이 주는 특유의 분위기를 즐길 수 있을 정도의 추위였다. 그래서 나는 목도리로 목을 감싸고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겨울의 온도를 느끼며 히베이라 광장 주변을 걸어다녔다.

 

포르투는 와인의 생산지는 아니지만 와이너리로 적합한 지역이라 대규모 와이너리가 많고 그렇기 때문에 이 곳의 지역명을 딴 '포르투와인'으로 유명한 곳이다. 포르투와인은 처음 마셔보았는데 나처럼 와인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도 확연히 구별할 수 있는 특유의 풍미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향과 맛에 비해 꽤 저렴한 가격에 포르투에 머무는 내내 식사를 할 때는 반드시 와인을 주문해 마셨다. 그래서 포르투를 여행하는 내내 와인 한잔의 기분 좋은 알딸딸함에 취해 있었던 것 같다.

포르투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은 단연 해질녘이었다.

하루는 해질녘에 강변을 걸어다녔고 하루는 아름다운 동루이스1세 다리가 보이는 전망대에 올랐다. 주변이 조금씩 어둑어둑해지면서 가로등 불빛에 강물이 조용히 젖어 들어가고 주황색의 지붕들이 저무는 태양 색과 어울리며 수채화같은 느낌을 주었다. 왜 주황색으로 지붕 색을 통일시켰을까, 왜 이런 붉은 지붕들은 내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노스탤지어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걸까 같은 시덥잖은 생각들을 하며 해가 저무는 것을 계속 바라보았다. 포르투의 갈매기들은 다들 약속이나 한듯이 해가 저물 때쯤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왜 그러는건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갈매기들이 마치 나도 날 수 있다고 외치는 것 같이 느껴졌다. 대낮엔 비록 먹이를 찾아야 한다는 이유로 날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굴욕적이게도 땅과 가까이 있어야 하지만 사실 나도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는 새라는 것을하루 한번씩 확인하는 행위 같았다. 날이 완전히 저물고 빛을 내는 동루이스1세 다리 위로 트램이 지나갔다. 덜컹 덜컹. 기차가 철교 위를 지나가는 소리는 왜 이렇게 다정할까. 저녁에 소리가 있다면 이런 소리가 아닐까. 그리운, 따뜻한, 그러나 한편으론 쓸쓸한.

마침 내 이어폰에서 자우림의 '영원히 영원히'가 흘러나왔다.

사라지지마 흐려지지마,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내가 보고 있는 풍경, 나를 둘러싼 모든 분위기, 그 속에서 느끼고 있는 나의 감정이 이 노래의 가사처럼 영원했으면 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영원하지 못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 붙잡고 싶었던 '지금'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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