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담한 소식을 접했다.
2년 전 떠난 그 친구를 마지막으로 이제는 더 듣고 싶지 않았던 소식.
그저 하염없이 마음이 아팠다.
사실 난 그 아이 개인에 대해서는 무관심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그 아이가 활동했던 F(x)의 노래 중에서 “첫 사랑니”는 내 플레이리스트에서 빠지지 않는 노래지만 그 외에는 타이틀곡 정도만 알았고, 그 아이가 출연한 드라마나 영화는 기회가 닿지 않아 본 적이 없다. 가끔 킬링타임으로 연예 기사를 넘길 때 어느 행사에 참석했다는 기사 사진을 보며 진짜 예쁘다고 생각한 정도였으려나.
그래도 한 번씩 그 아이의 소신 있는 발언이 이슈가 될 때 나는 그 아이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브래지어와 액세서리를 동일 선상에 두는 그녀의 생각에 공감하였기 때문에 그런 면만 부각해서 그녀를 성적 대상화 하는 것에 분노했으며 도대체 브래지어 그게 뭐라고 그것 하나 안 했다고 질타하는 목소리가 너무 싫었다. 같은 가슴인데 왜 한쪽은 찌찌파티니 하우두유두니 무려 방송에서도 장난스럽게 말할 수 있는데, 왜 여성의 유방은 보이면 세상 무너질 듯 호들갑인지. 나도 노브라로 자주 다닌다. 나보다 어린 그 아이가 용기를 내어서 남 눈치 보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줬기 때문에 나도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었다.
그 아이가 너무 아름답고, 용기 있고, 그래서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그래서 그 아이를 향해 응원의 말 한 마디 남겨주지 않았고, 그 아이를 향한 모진 말을 퍼붓는 사람들을 말리지도 않았다. 그냥 내가 한 마디라도 덕분에 시선들로부터 더 자유로워지기 위해 노력할 수 있었다고 말했더라면 지금처럼 마음이 아프진 않았을까.
소식을 접하고 이상하게도 그 아이에 대해 가장 먼저 떠오른 이미지는 그 아이의 데뷔 티저였다.
내가 ‘설리’라는 존재를 가장 처음 알게 된 그 이미지. 그룹 이름이 이제 하다 하다 F(x)까지 간 거냐며 틀어봤던 데뷔 티저. 앳된 얼굴로 파워풀한 댄스를 추며 귀여운 미소가 인상적이었던 아이.
내 동생과 나이가 같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말과 글로 난도질당했을 것 같아서 사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 그냥 말과 글 자체에 다 염증이 났다. 말도 글도 없는 고요한 세계로 가버리고 싶었다. 진짜 나쁜 의도를 가지고 상처입힌 사람도 있겠지만 상당수는 자기가 칼을 휘두르는지도 모른 채 휘둘렀을 것이다. 장난으로, 재미로, 조언한답시고, 선의의 충고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을 방어하기 위해, 자신을 변명하기 위해.
1차원적인 비방에서부터 교묘하게 자신의 지식을 끌어다가, 무슨 무슨 이즘을 끌어다가 공격하는 말까지. 걱정하는 척하면서 조롱하고, 위로하는 척하면서 선을 넘고. 나는 안 그랬을까?
왜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못해 안달이 난 것처럼 살아가는 걸까.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을 수는 없을까.
말과 글로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들도 싫고, 이걸 방관하고 있는 포털사이트들의 위선도 싫다. 기사 밑 댓글에서 얼마나 유의미한 토론이 일어난다고, 왜 댓글을 쓰는 것을 없애지 않는 걸까. 내가 내 주변의 사람들보다 조금 더 K-pop 특히 아이돌들에게 관심이 많아서 그런가 이런 문제가 자꾸 반복되는 탐욕스러운 산업 시스템도 혐오스럽다. 너무 많은 문제가 얽혀있어서 어디서부터 화를 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이유가 최근 인스타그램에 설리의 사진을 올리며 같이 올렸던 해시태그가 아리다.
#귀한 집 #귀한 딸
그 아이에게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지만 내 핸드폰 사진첩 속에 이 사진이 있었다.
밝은 태양광 아래에서 자유로워 보이는 모습이 너무 예쁘다고 생각해서 나도 모르게 저장을 했었나 보다.
그곳에서는 아픈 말 듣지 말고 귀하고 고운 것들만 보고 들으며 이렇게 환하게 웃는 일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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