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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___Diary

태교? 태교!

by 썸머Summer 2020. 3. 9.

 

흔히들 태교와 그 필요성에 관해 이야기하기에 나도 자연스럽게 ‘태교를 해야지’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절실한 필요성은 잘 느껴지지 않아서 자연스레 그냥 손을 놓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엄마랑 통화하다 알게 되었는데, 엄마는 나를 가졌을 때 종일 전래동화 테이프를 틀어놓고 계셨다고 한다. 또 내 움직임이 활발할 때는 동화책도 많이 읽어 주고 심지어 과일을 먹을 때도 예쁘고 좋은 것만 보고 먹으려고 노력했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새삼 깨달았다. 나는 그냥 나 스스로 잘 커온 줄 알았는데 사실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엄마의 사랑과 노력을 무럭무럭 먹고 자랐다는, 새삼스럽지만 놀라운 사실을. 

그래서 나도 내 뱃속 아기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어서 태교를 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이게 진짜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우선 다들 임산부는 좋은 것만 보고 좋은 생각만 하라고 얘기하는데, 혼자서 꽃밭을 사는 것도 아니고 험난한 이 세상에서 좋은 것만 보고 좋은 생각만 하기는 너무 어렵다. 임신 전 30년의 세월 동안 나쁘고 불안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실컷 해왔는데 갑자기 모든 세상을 아름답다고 여기라니. 심지어 요즘처럼 전 세계에 불안감이 고조되어 있을 때는 더욱 불가능에 가까운 것 같다.  

또 아기의 정서에 좋다고 해서 소위 ‘태교 음악’이라는 평화로운 모차르트의 음악도 들어보았지만, 음악이 영 내 취향에 맞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 궁금한 것은 내가 이어폰으로 듣는 것도 아이가 들을 수 있는 건가? 아이에게 소리는 어떻게 전달되는 거지?) 동화책을 엄마가 읽어 주면 좋다고 들었는데 지금도 한국에 다시 들고 가야 할 책들이 넘쳐나는 상황이라 동화책을 새로 사기가 망설여진다. 게다가 어차피 아기는 어떤 책을 읽든 이해하지 못할 텐데 굳이 내가 아이 눈높이의 동화를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심도 든다. 

그래서 그냥 제멋대로 우당탕 태교를 하고 있다. 내 취향이 아닌 평화로운 ‘태교 음악’ 대신에 평소에도 좋아했던 감정을 요동치게 만드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이나 차이콥스키 교향곡 등을 들으며 광광 울리는 마음을 만끽하고 있다. 또 방탄소년단의 새 앨범을 들으며 신나게 따라 부른다. 내가 기분 좋으면 아기도 기분 좋지 않을까? 심지어 요즘 ‘미스터트롯’도 매주 챙겨보고 있는데 우리 아이가 태어나서 어떤 스타일의 음악을 좋아할지 궁금하다.

책은 일단 유일하게 집에 있는 동화책인 로알드 달의 <Witches>를 낭독했다. 동화책이면서 영어책이니까 이것이야말로 일석이조? 그 책을 다 읽고 난 뒤 어떤 것을 낭독하면 재밌을까 싶어서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를 낭독했다. 아가가 읽기엔 무시무시한 내용이었지만 아기는 어차피 무슨 내용일지 잘 모를 테니 괜찮아(?). 게다가 나중에 아가에게 그림책을 읽어 줄 때 실감 나게 읽을 수 있도록 나의 연기력이 향상된 것 같다. 계속 이렇게 희곡들을 낭독해야지. 

어쩌면 태교에서 제일 중요할 수 있는 ‘좋은 것만 보고 생각하기’는 가장 잘 실천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만큼 우리 아기는 험난한 세상을 잘 헤쳐나갈 만큼 강하게 태어나지 않을까 하고 괜히 변명 겸 기대를 해 본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도 다 너에게 도움이 되기를, 너도 나의 사랑을 무럭무럭 먹고 있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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