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은 앞에서도 썼듯이 내가 가장 마음을 졸이고 걱정했던 여행이었다. 비행기가 무사히 착륙한 뒤 택시를 타고 호텔에 도착하는 그 순간까지도 마음을 놓지 못했다. 하지만 태양이 내리쬐는 해변의 노천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는 그 순간엔 역시 여행 오길 잘했다는 생각만 들었다.
특히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임신을 기념하는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아름다운 자연광 덕분에 어디로 카메라를 들어도 사진이 예쁘게 찍혀서 기분이 정말 좋았다. 늘 보던 풍경을 벗어나 그리웠던 따스한 햇볕,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 아름답게 빛나는 바다 속에 내가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한국에서 들려오는 걱정스런 소식들도 태양 아래 부서지는 천진한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아득히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이튿날 새벽, 거세게 몰아치는 바람 소리에 잠에서 깼을 땐 밤새 폭풍우가 치고 있는가 싶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일어나 조식을 먹으러 나가는 길에 보니 비는 오지 않았고 오히려 미지근한 바람만 거세게 불고 있었다. 호텔의 야외 수영장은 폐쇄된 상태였는데 이때만 해도 바람이 너무 강해 안전상 위험 때문에 문을 닫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후가 되니 하늘의 색깔이 무섭게 변하기 시작했다. 오후 1시밖에 안됐는데 마치 노을이 하늘을 물들이는 것처럼, 그러나 불길한 주홍빛으로 변하였다. 그것의 정체는 바로 모래바람이었다. 내가 여행을 온 테네리페 섬은 스페인이지만 본토와는 1600km 정도 떨어져있고 오히려 아프리카, 특히 사하라 사막과는 25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즉 강한 바람을 타고 사하라 사막에서부터 모래가 날아온 것이었다.
찾아보니 “Calima”라는 이 지역에서 가끔 일어나는 기상 현상 중 하나인데 이번 모래 폭풍은 꽤 심한 편이었다. 비행기의 이착륙이 전부 취소되어 공항이 폐쇄되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고 모래와 먼지가 섞인 매캐한 바람에 방에서 나갈 수가 없었다. 아무리 창문을 닫아도 조금씩은 모래 먼지가 방에 들어오는지 방에서도 불쾌한 모래 냄새가 나고 호흡하기가 어려웠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이 우주로 떠나기 전 지구의 모습이나 ‘매드맥스’ 속의 풍경이 떠올랐다. 그렇다. 아포칼립스 세상이 떠올랐다. 그냥 따뜻하게 내리쬐는 태양, 그것 하나 바라고 왔는데 마주친 것은 아포칼립스 세상이라니. 역시 이카루스와 파에톤의 이야기처럼 태양은 함부로 욕심내서는 안 되는 존재인 걸까.
다행히 뉴스에서 내일은 모래폭풍이 잦아든다고 하던데, 내일 오전 중에 최대한 빨리 이 상황이 나아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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