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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생각하고

영화 <조커>를 보고 느낀 생각

by 썸머Summer 2019. 10. 8.

내 평점 : ★

영화에 대한 글이므로 스포일러 많음

 

 

1. 일단 좋은 점부터 얘기하자면 배우 호아킨피닉스의 조커 연기. 표정, 몸짓, 걸음걸이, 말투, 목소리 모든 것이 아서그 자체였다. 특히 이 배우가 <HER>의 주인공 남자였고, <글레디에이터>의 황제였다는 것을 영화가 끝난 뒤 배우에 대해 찾아보다가 알게 되었는데, 그 사실을 알고 나서도 동일인물이라는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완벽한 Joker의 가면을 쓰고 등장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알게 되었는데 호아킨피닉스가 케이시에플렉의 성추행에 동조했다는 기사가 있다.
(출처 https://time.com/4645846/what-to-know-about-the-casey-affleck-oscar-controversy/?amp=true&__twitter_impression=true )
흠. 일단 내 마음속에서 이 배우는 지워집니다.  

 

Casey Affleck Just Addressed #MeToo and the Harassment Allegations Against Him. Here's What to Know About the Controversy

'Manchester by the Sea' actor Casey Affleck, the frontrunner for the best actor Oscar, was sued for sexual harassment by two women in 2010.

time.com

2. 영화를 일반 관객의 눈으로만 겨우 볼 뿐이라 연출, 디자인, 구성 등 디테일한 점은 잘 볼 줄 모르지만 그럼에도 내 눈에도 이런 연출은 되게 괜찮았다 할만한 지점이 있었다.

첫 번째는 머레이쇼에서 조커가 머레이를 살해하는 모습을 미디어에서 다루는 것을 표현한 장면. 여러 대의 티비 모니터가 화면에 등장하면서 끔찍한 사건을 뉴스나 가십거리 등으로 소비하는 모습이 드러났는데 어떤 사건을 다루는 현대 사회의 미디어들이 사건 못지않게 끔찍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동시에 이 영화를 보면서 범죄장면을(연출된 픽션이지만) 소비하고 있는 내 모습을 거울로 비추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약간 한 순간이지만 수전손택의 타인의 고통도 생각나고)

그리고 난 이 영화에서 음악과 빛을 잘 사용했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분위기와 다른 명랑한 음악이 적재적소에 쓰여서 새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도 좋았는데 빛을 사용하는 것이 아주 인상적이라 좀 더 자세히 얘기하고 싶다. '빛'의 스펙트럼 속에는 기분을 좋게 하는 빛과 신경을 예민하게 건드리는 빛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서 주변의 일반적인 빛은 신경에 거슬리는 빛이었다. 침침한 건물과 집의 불빛, 티비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 특히 살인이 일어나고 마는 지하철에서의 반복적으로 밝아졌다 어두워졌다하는 불빛들이 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어둡고도 어두운 삶과 내면을 지닌 남자 아서에게 가끔 눈부실 만큼 환한 빛이 내리쬘 때가 있었는데 예를 들면 아서가 극단(?) HAHA’s에서 잘려서 ‘Don’t forget to Smile’에서 ‘Forget to’를 신경질적으로 지우고 밖으로 나갈 때 문 밖의 환한 빛, 아서에서 조커로 각성(?)한 채 계단에서 춤을 출 때 비치는 햇빛, 머레이쇼에 등장할 때 그를 향한 스포트라이트 불빛, 수용시설에서 피로 물든 발자국을 남긴 채 걸어갈 때 그에게 쏟아지는 눈부신 빛 등이다. 이러한 장면들에서 표현된 빛은 코미디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코미디언인 아서에게 비춰진 잔인한 스포트라이트와도 중첩되면서 빛이 환해질수록 더욱 깊어지는 어둠의 이미지가 강조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러한 빛의 사용을 통해 나란히 놓일 수 없다고 생각되는 빛과 어둠이 함께 등장하며 아이러니한 감각을 느끼게 해주었다. ‘아이러니라는 말 자체가 희극인물 유형 중 하나인 에이런에서 왔는데 이런 모순과 부조화를 빛의 사용을 통해 표현함으로써 “I thought my life was a tragedy, but it was a fucking comedy.”라는 대사와 절묘한 조화를 이룬 것 같다. (애초에 어릿광대가 희극의 인물유형이지만)

3. 이제부턴 별로 안 좋았던 점! 
일단, 어차피 그런 내용일 거라고 예상을 하고 갔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실망스러운 줄거리. 지금 2019년에 우리가 왜 굳이 이 이야기를 해야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굳이 또? 이런 느낌. 사람들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살인자가 끔찍한 살인자가 되기 전에 우리 사회가 따뜻한 손길을 건넸더라면... 하는 식의 이야기를 아직도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조커가 탄생한 곳이 ‘고담시티라고는 하지만 너도 알고 나도 아는 배경 사회인 미국사회에 대해서는 난 잘 모른다. 그렇지만 내가 잘 알고 있는 한국사회에 대해서만 생각해봐도 가해자를 변명해주는 이야기들은 이미 넘쳐난다. 정신 미약 상태라, 술에 취해서 같은 어쭙잖은 변명부터 길에서 태어나서 김길태가 되었다던 연쇄살인마에 대한 감상적인 접근, 심지어 화성 연쇄살인의 용의자 이춘재마저 자신의 범행 동기가 어린 시절 성폭행을 당한 경험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와중에 그들의 목소리를 한 번 더 들려 줄 필요가 있을까. 끔찍한 범죄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고 주변인에 대한 따뜻한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피해자의 억울한 목소리는 죽은 자의 그것이 되어 흩어져버리고 가해자에 대한 센티멘탈한 목소리만 너무 크고 많은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미 많은 이들이 가해자나 범죄자에게 감정을 이입하거나 심지어 어떤 상징적 캐릭터나 영웅처럼 취급하고 있는 와중에 굳이 조커라는, 할로윈만 되면 너나 나나 코스프레를 한다는, 그 유명하고 사랑받는(?) 캐릭터를 이용해서 또 이 얘기를 하는 것이 너무 진부하고 지루하게 느껴졌다. 한편으론 게으르다고까지 느껴질 정도.

4. 내가 캐릭터로서 좋아했던 조커는 많은 이들처럼 영화 <다크 나이트> 속의 조커이다. 내가 DC 코믹스 세계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냥 내가 영화 <다크 나이트>속 조커에 열광했던 이유는 밑도 끝도 없는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내게 빌런 캐릭터는 모두 이유나 목적이 있는 존재들이었다. 엄청난 돈을 탈취하기 위해,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 세상 사람들을 다 쓸어버리고 싶어서 등 냉정하고 차가운 조직 보스부터 정신이 나가버린 천재과학자 악당까지 전부 그랬다. 그러나 <다크 나이트> 속 조커는 왜 악이 된건지, 무슨 목적으로 악을 행하는지 그냥 이유가 없다. 중간에 어릴 적 학대당했다는 얘기가 살짝 나왔지만, 그마저도 사실인지 아닌지 모호하게 처리되었다. 이처럼 끝 모를 악이라는 존재에 매료되었는데 영화 <조커>속 조커는 너무 구구절절하다. 진짜 세상의 슬픈 사연들을 다 끌어다 모아놓은 캐릭터 그 자체였다. 어릴 때부터 학대당하고 공공 의료서비스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착하게 살아보려 했으나 세상이 그렇게 놔두지 않은 그런 인물. 영화의 장치지만 버스에서 아이와 까꿍~하며 노는 아서에게 쌀쌀맞게 대하는 아줌마나 아서의 스탠딩 코미디 영상을 방송으로 틀면서 조롱하는 머레이나 뭔가 아니 뭐 불쌍한 사람한테 저렇게까지=_=;;; 하는 생각이 들어 작위적으로까지 느껴졌다그래서 <조커>에서 죽은 사람들은 영화 속에서 죽을 만하다라고 느껴지는 사람들뿐이다. 난쟁이 광대 개리는 아서에게 따뜻하게 대해줬다는 이유로 목숨을 건졌다. 고담 시티 전체를 무정부 상태와 혼란의 폭동 속에 빠지도록 만드는 악과 카오스의 화신으로서 조커와 나한테 해를 끼친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개인적 원한 살인범으로서의 조커가 서로 어울리지 않아 조커라는 캐릭터가 가진 매력을 많이 반감시킨 것 같다.

5. 여성관객으로서 ‘소피라는 인물에 자연스럽게 감정이입 되면서 불쾌감이 느껴졌다. 많은 사람들과 사회의 차가움이 조커라는 악인을 탄생시켰다고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얘기한다. 그러나 소피는 아서에게 쌀쌀맞게 대하지 않은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이다. 큰 교류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같은 건물에 사는 이웃 간에 나눌만한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은 것이 다이지만 적어도 그녀는 아서를 모욕하거나 물리적인 해를 가하지 않았다. 오히려 잠깐 주고받은 농담은 미약하지만 친밀함의 언어이다. 그런데 그런 이유만으로 그녀는 아서의 망상의 대상이 되고 주거침입까지 당한다. 소피가 그 후에 어떻게 되었을지는 생략이 되어있지만 왜 나랑 안 사귀어 줘의 이유로 스토킹 당하거나 최악의 경우엔 끔찍하게 살해당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뉴스로 많이 접했기 때문에 자신의 망상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소피에게 참혹한 일이 생겼다고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여성으로서 나는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하는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이 무서워서 경계했을 뿐인데 여자들이 나를 무시한다고 주장하는 살인마한테 살해당할 수도 있고(-_-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 이를 피하려고 순수한 의도에서 따뜻한 손길을 건넸을 뿐인데 내 의도를 오해해 왜 날 사랑하지 않냐며 스토킹당하다 죽을 수도 있는 세상에서(당장 구글에 스토킹 살인이라고만 검색해도 각기 다른 사건에 대한 내용이 나옴) 아서와 소피의 이야기는 불쾌한 두려움과 심지어는 분노까지 느끼게 만들었다. 혼자서 어린 딸을 키우며 사는 여자 소피가 사회적 소외계층으로서 아서보다 이중고를 겪었으면 겪었지 더 나을 것이 없을텐데 한쪽은 조커가 되어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맘대로 하고, 한쪽은 두려움에 떨며 이쪽 방에서 어린아이가 자고 있으니 나쁜 짓을 하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이라니. 러닝타임 내내 악인에게 그럴싸한 이유와 서사를 부여하는 이 영화가 언짢게 느껴지는 이유였다. 왜 비슷한 서사에 다른 결과가 나타나냐구요.  

6.영화 논외의 이야기 !
나는 지금까지 항상 Cineworld라는 영화관에서만 영화를 봤었다. 이곳이 우리집에서 가깝기도 하고 주차하기도 편하고 그래서 이곳을 자연스럽게 이용했는데 이 영화관은 한국의 영화관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좌석도 화면도 비슷비슷. 근데 이번에 <조커>영화를 예매하려고 할 때 아직은 영어자막이 필요하기 때문에 subtitled 버전을 상영해주는 영화관을 찾다 보니 시간상 맞는 게 Odeon이라는 극장밖에 없었다. 물론 지점마다 다르겠지만 우리 동네에 있는 OdeonCineworld에 비해 겉으로 보기에도 오래된 영화관처럼 보여서 큰 기대를 안하긴 했다. 그러나 와우 이건 정말 상상 이상으로 후진 영화관이었다 ㅋㅋㅋㅋ 
멀티플렉스라는 것이 생기기 전에 부모님과 갔던 ㅇㅇ극장이 이런 느낌이었던가 싶을 정도로 화면은 과장 좀 보태 말해서 큰 텔레비전 수준으로 작았고 좌석은 단차가 거의 없어서 내 앞 사람의 머리 반 정도가 영화를 보는 내내 화면을 가렸다. 특히 자막이 밑에 있으니까 옆 사람의 머리를 피하면서 자막을 보는데 하 정말... -_ㅠ 그리고 상영관 자체가 반지하에 있어서 그런지 오래되고 습기 찬 건물에서 나는 눅눅한 먼지 곰팡이 냄새와 누가 이 극장에서 지리기라도 했는지 오줌 지린내 같은 것이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나서 마치 내가 고담시티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라 지금 4D영화를 보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같이 본 친구도 영화 내내 누가 뒤에서 총기 난사 할 것 같아서 불안했다고ㅋㅋㅋ)

7. 그리고 생전 처음 보는 관람객들의 관람 매너 
이게 자막 버전의 영화라 관람객 중 영국인은 거의 없고 나처럼 외국인, 특히 중국인의 비중이 압도적이었다. 근데 정말 중국인의 저세상 저작권 개념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영화 보는 내내 약간 하이라이트다 싶은 장면이 나오면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찍거나 동영상을 촬영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 영화 인증샷을 이런 식으로 상영 중에 찍어대는게 어딨냐며 ㅋㅋㅋ 특히 트레일러에도, 포스터에도 나오는 계단에서 조커가 춤을 추던 장면에서 일제히 핸드폰 카메라가 화면을 향해서 ㅋㅋㅋ 그와중에 내 옆 사람 플래시까지 터트리구요^ㅁ^ 와우 그동안 cineworld에선 내가 가는 시간마다 관람객이 거의 없어서 그런지 진짜 이런 경험은 난생 처음이었고 다시는 안 하고 싶다. 저세상 관람매너가 영화 내용보다 더 공포와 충격....

, 그리고 한국에서 이 영화를 감상한 사람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정말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난쟁이 광대 개리가 공포에 질려 아서의 집을 탈출하려고 할 때 키가 작아 자물쇠를 열지 못하는 그 장면, 한국에서도 폭소가 터진 장면이었나요? 난 진짜 절대 웃음 포인트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엄청난 폭소가 쏟아져서 너무 황당했다. 아무리 영화라도 한 사람이 끔찍하게 살해당하고 자신도 살해당할 수 있는 상황에 처해 있는 난쟁이가 키가 작아 자물쇠를 못 여는 게 슬랩스틱인 것마냥 웃는 것이 참.... 찰리채플린이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말했다지만 이거 원 너무 멀리서 본 것 아니요 (그러고 보니 중간에 찰리 채플린의 영화도 잠깐 등장했네. 이 영화의 선명한 메시지였던 “I thought my life was a tragedy, but it was a fucking comedy”의 또 다른 변주인가) 머레이가 총에 맞았을 때도 예스! 하는 그런 감탄사(??)가 터져 나왔는데 으아니 사람이 총 맞아 죽었는데 이 사람들은 도대체 왜;;;;; 이런 사람들과 같은 영화를 보고 있다는 것이 그냥 소름끼치고 불쾌했다. -_ㅠ 내가 예민한 걸까. 어쨌든 다시는 이 영화관에는 가지 않겠다고 다짐 또 다짐.  

영화가 끝나니 저녁 8시 반. 한국과 다르게 이곳에선 일요일이라 가게들도 다 문을 닫아 거리엔 불이 꺼지고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니 진짜 고담 시티가 따로 없었다. 무서운 마음에 밤거리를 후다닥 뛰어 집으로 돌아갔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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