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느질하는 여자>, 김숨
‘바늘’…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와 같은 관용구 속의 바늘은 ‘아주 작은 것’의 대표명사로 쓰인다. 성경에서조차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까지 말하지 않았는가. 김숨의 장편소설 <바느질하는 여자>는 이런 조그마한 바늘에 대한 이야기이며 마치 바늘처럼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여자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소설 속엔 다양한 여자들이 등장하고 그녀들은 공통적으로 바늘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간다. 언뜻 보면 바느질로 먹고 살아간다는 것이 닮아 보이지만, 같은 노란빛이라도 애기오줌색과 염소눈빛색이 엄연히 다른 것처럼 그녀들의 삶은 각각 고유의 빛깔을 가지고 있다.
오로지 누비옷만을 한결같은 방식으로 짓는 어머니 수덕은 정말 끝없이 바느질을 한다. 마치 끊임없이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고 있는 시시포스처럼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옷을 짓는다. 공장에서 미싱으로 옷을 만드는 시대라는 이야기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30년 동안 같은 방식으로 고집스레 누비옷만 지어온 그녀에게 바느질은 어떤 의미였을까.
쉬지 않은 바느질의 결과, 바늘조차 제대로 들 수도 없이 손이 망가져버리고 최후엔 정신까지 잃어버리게 되지만 그녀에게서 바느질이 시시포스의 형벌과 같은 존재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바느질을 통해서 ‘명장’이라는 명예나, 많은 돈을 얻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예술의 경지에 오르겠다는 뜻을 가지지도 않았다.
그저 그녀가 뜬 바늘 한 땀은 한 톨의 쌀이 되어 돌아오고, 그 한 땀으로 그녀의 딸 금택과 화순을 먹이고 키워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가락이 뒤틀리고 몸이 삭아도 결국 잔누비 쓰개 장옷을 완성시키는 그녀의 모습에서 한 가지에 죽도록 매달리는 자가 가질 수 있는 ‘귀기’를 느낄 수 있었다.
수덕과 마찬가지로 한복거리의 다른 여자들, 부령 할매, 재숙, 재숙의 외할머니, 자수 놓는 쌍둥이 자매, 자수 장인의 제자였던 외팔 여자, 양말만을 기우는 부엉상회의 주인여자까지 모두 다양한 옷감과 바느질 방법이 존재하듯 그녀들은 서로 다른 삶을 바늘로 뜨며 살아가고 있다.
‘바늘’과 ‘-질’이 만나 만들어져 ‘-질’의 어감 때문인지 그다지 가치가 높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이 행위의 한 땀이 수덕에게는 쌀 한 톨이 되었던 것처럼, 부령 할매에게는 죽은 이를 위한 숭고한 기도의 산물이 되었다. 또 한복거리의 여자들에게 바느질은 어머니의 삶을 안쓰러워 한 활옷 같은 딸의 마음이었고, 겨울에도 제대로 옷 한 벌 못 입는 형편에 건네는 노란 나비 색깔 누비 목도리 같은 위로였으며, 평생 남의 옷만 짓다가 자기 옷도 한 벌 못 지어 입어본 여자에게 건네고 싶었던 누비조끼 같은 동정이기도 하였다.
이처럼 바느질 하는 여자들이 떠 간 바늘 땀은 새로 태어난 아이들의 배냇저고리가 되어 생(生)의 기쁨을 말하고, 죽은 이의 수의가 되어 죽음의 자세를 알려주며 생의 처음과 끝에 함께 존재한다. 이러한 바느질의 숙명 앞에서 ‘금택’처럼 피를 흘릴 정도로 두려워하며 경외하는 자세를 취하기도 하고, ‘화순’처럼 바늘을 피하기 위해 힘껏 발버둥치기도 해보지만 결국 두 사람도 각자의 인생에서 바느질의 숙명을 받아들인다.
이 소설 속에서 핏줄을 통해 이어지는 부계 질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아버지의 존재도 불분명하고 금택과 화순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는 수덕으로 인해 금택과 화순의 친어머니가 수덕인지에 대해 말하기가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덕이 금택과 화순에게 누비 바늘을 전해 준 그 순간부터 금택과 화순은 확실한 수덕의 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 속의 바느질하는 여자들은 금택과 화순처럼 각자의 어머니께, 시어머니께, 외할머니께 바느질이라는 천행이자 운명을 전해 받으며 자신들만의 바늘 땀을 뜨며 삶을 완성해 나가는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완성된 멋지고 아름다운 옷에 경탄을 보내지 그 속에 숨어있는 수 천, 수 만개의 바늘땀들에 경이의 시선을 던지지 않는다. 그러나 누군가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취급을 하여도 옷이 제대로 지어지기 위해서는 한 땀도 한 땀이고, 백 땀도 한 땀이다. 가장 단순하지만 그러나 가장 어렵다는 누비 바느질처럼 별 것 없고 시시해보이지만 아마 수백만, 수천만 개의 각기 다른 방식으로 또박또박 땀을 떠간 인생들이 모인 것, 세상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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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블로그에 2017년에 적어 둔 리뷰였다. 그때 우리 시에서 주최하는 서평대회에 제출해보려 했으나 이래저래 시간에 치여 결국 기한을 넘겨버려서 아쉬운 마음에 그냥 블로그에나마 올려뒀었다. 오늘 예전에 쓴 글을 찾을 일이 있어서 그 블로그에 오랜만에 들어갔다가 2019년에 어떤 한 분이 내가 쓴 서평을 칭찬하는 댓글을 남기신걸 발견했다.
늘 그냥 내 만족으로 쓰는 글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을 훌쩍 넘어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좋아했다는 것이 뭔가 너무 기분이 좋았다. +_+ 그래서 나의 새 보금자리에서도 누군가 한번쯤 더 읽어주길 바라며 괜히 한번 옮겨 붙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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