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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덧하는 이야기 모든 사람은 어머니의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거쳐 태어났음에도 우린 생각보다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 대해 무지한 것 같다. 학교에서도 수정의 순간을 배우거나 유전학적인 측면의 감수분열에 대해 자세히 배웠으면 배웠지 임신과 출산의 전 과정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다루고 넘어갔던 것 같다. 임신과 출산을 겪을 가능성을 가진 여자로 살아온 나도 잘 알지 못했는데, 그 과정을 겪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남자들은 말해서 무엇하겠나. 그래서 임신을 하고 난 뒤 내게 일어난 신체적 변화들은 모두 하나하나 내게 당혹감을 준다. 그중 첫 번째로 마주한 녀석이 바로 입덧이었다. ‘임신하면 입덧을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직장에서 입덧으로 고생하는 직원분들의 모습도 분명 봤지만, 그들이 정확히 어떻게 힘들어하는지에 대해.. 2020. 1. 18.
영국의 의료 시스템이 힘들어 오늘은 임신을 확인하고 병원을 방문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적어보려고 한다. 만약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임신테스트기로 확인 후 산부인과 방문’으로 끝났을 간단한 절차가 영국에서는 참 복잡했다. 우선 영국은 NHS라는 국민 건강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어서 모든 병원비가 무상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약값도 면제된다. 나도 영국에 올 때 비자를 신청하면서 NHS 보건부담금을 지급했기 때문에 나도 무상 진료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만 말하면 정말 너무 괜찮은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렇게 모든 국민에게 (심지어 나 같은 외국인에게도) 무상으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다 보니 사회적 비용이 많이 들어서 그런지 병원의 문턱이 굉장히 높다. 의료보험제도가 지옥 같은 나라에서 온 사람이라면 만족할 수도 있겠지만 .. 2020. 1. 16.
임신을 처음 확인한 날 이야기 오늘의 나는 13주 6일차의 임산부이다. 임신 초기에 있었던 많은 일들과 그때 느꼈던 생각들을 그동안은 입덧 때문에 정리하지 못해서 대신 오늘부터 차분하게 글로 써 내려가려 한다. 먼저 오늘은 임신을 처음 확인했던 그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그날은 우리의 결혼기념일이었고 그날을 기념하기 위해 남편과 함께 런던에 당일치기로 놀러갔었다. 그동안 런던에 많이 놀러갔지만 그동안 하지 않았던 것들을 하자는 마음으로 마담투소의 밀랍박물관도 놀러 가보고, 처음으로 런던아이에 타서 해가 뉘엿뉘엿 저무는 템스강변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런던수족관을 구경하며 뜻밖의 횟감, 참돔과 숭어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또 남이 해준 한식이 더 그리워서 굳이 한식당에 찾아가 집에서 해먹기 어려운 감자탕에 치즈불닭을 시켜 먹으며 행복.. 2020. 1. 15.
요즘 나에게 필요한 정리 이 글이 아마 내가 쭉 써내려갈 글들의 서문이 되지 않을까 싶다. 요즘 나는 무엇보다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물리적인 정돈이 아닌 나의 감정, 생각 그리고 흘러가는 일상의 시간들의 정리가 필요하다. 현재 나는 임신 13주차의 임산부이다. 지금도 지속되고는 있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 심한 입덧에 시달려서 오늘이 크리스마스인지 새해인지도 모른 채로 연말을 보냈다. 그래서 2019년의 마무리도, 2020년의 다짐도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어영부영 한해가 넘어가는 것을 무기력하게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래서 친구가 1월부터 매일 글쓰기에 도전해보자고 권했을 때, 내게 정말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우연한 기회로 해외에 잠시 거주하고 있는 것도, 그리고 타국에서 임신을 한 것도 내겐 하나하나가.. 2020. 1. 15.
<Topography of Terror> 방문 Topography of Terror 직역하면 ‘공포의 지형.’ 좀 더 다듬으면 ‘공포의 장소’ 정도라고 할 수 있으려나. 독일에서 나치당이 집권한 뒤 벌어진 SS, 게슈타포 같은 비밀경찰들의 범죄행각 및 홀로코스트의 참상에 대해 자세히 전시한 전시관이다. 이 건물은 이제는 무너져 흔적만 남은 베를린 장벽 근처에 있다. 많은 관광객들이 있었지만 이곳의 첫 느낌은 마치 버려진 땅 같았다. 주변엔 아무것도 없이 그저 이 땅을 분리시켰던, 지금은 부서진 벽과 철로 된 구조물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회색으로 가득 찬 고독한 장면이었다. 회색 하늘, 회색 땅, 회색 건물. 이 장소와 건물을 거창한 추모 공간처럼 꾸미려는 의도는 없어보였다. 그저 그들이 과거에 어떤 일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객관적 증거물처럼 덩그러니.. 2019. 11. 17.
베를린에서 한 여러가지 생각들 나는 사실 ‘독일’이라는 나라를 여행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었다. ‘독일’하면 위대한 문학가와 철학자의 나라이며 세계사 특히 근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영향력이 큰 나라라는 것을 알지만 어디로 여행을 떠나고 싶냐고 물어봤을 때 한번도 독일에 가고 싶다고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베를린에 여행을 갔다 온 언니가 베를린에는 정말 독특한 이 도시만의 무드가 있다고, 혼자 여행을 하고 싶다면 꼭 베를린에 가보라고 추천해주면서 내 마음속에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처음 들어왔다. 그전에 내게 베를린은 내가 영화관에서 보다가 숙면을 취한 몇 안되는 영화 중 하나 정도였다고나 할까. (이번 베를린 여행을 준비하며 다시 한 번 이 영화를 봤는데, 내가 왜 잠들었는지 너무 잘 알겠더라. 대사 전달력 어쩔거야. 대사.. 2019. 1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