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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___Diary

출산하는 날의 기록

by 썸머Summer 2020. 8. 5.

예정일이었던 7월 15일 수요일에서 3일이 지난 토요일 아침, 드디어 ‘이슬’이라는 것을 보았다. 분만할 때 아플 것 같아서 아기가 작게 태어났으면 하는 마음에 38주 정도부터 얼른 나오라고 노래를 불렀지만 결국 예정일을 넘기면서 기다림의 지루함, 또 한편 초조함은 하루하루 커져가는 찰나에 출산의 조짐이 처음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39주 5일에 병원에서 검사를 했을 때, 아이가 골반에 전혀 진입하지 않았고 경부길이도 길고 자궁문도 안 열리는 등 자연분만이 어려울 것 같다는 얘기를 듣고, 일단 그래도 1주일은 기다려주자는 마음에 그 다음 주 금요일에 제왕절개 수술 스케줄을 잡아 놓긴 했는데 이슬이 보이면서 극적으로 아기가 팍팍 내려와 자연분만을 할 수 있게 된 건가 싶었다. (마지막 주엔 정말 많이 걸었는데 걷기 효과가 나타난 것인가! 하면서) 그러나 아침에 이슬은 봤지만 딱히 진통은 오지 않아서 아기가 더 잘 내려오라고 토요일에도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영국에 갈 때 차를 팔고 가느라 차가 없어서 대리점들을 방문하며 자동차 상담을 받고, 바닷가 근처 식당과 카페에도 들르며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거실에서 <아는형님>의 강호동 웃음소리가 들릴 때쯤부터 미약한 진통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약간 싸르르-한 느낌의 생리통으로 약 20분 정도의 주기로 왔다. 그러더니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평소에도 생리통이 심하면 아픈 부위인 엉치뼈 쪽으로 아픔이 느껴졌다. 그리고는 주기도 점점 짧아지고 강도도 세져갔다. 처음엔 참을만하던 아픔이 나중엔 숨조차 쉬기 힘들 정도의 고통으로 바뀌었다. 호흡법을 기억하며 최대한 이완해보려고 했으나 정신을 차리기 힘든 고통 앞에서 차분하게 숨을 들이쉬기가 어려워 과호흡이 올 정도였다. 진통 주기가 5분 간격이 될 때 병원에 가야한다고 알고 있었고, 또 토요일 새벽이라 지금 병원에 달려가도 아무도 어떻게 해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무통주사를 새벽에는 못 맞는다고 안내를 받았었음) 일단은 계속 집에서 참아보았고 그렇게 밤새 몸부림치다가, 새벽 5시쯤 진통 주기가 5분 정도로 바뀌었을 때 병원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병원 분만실에 도착해서 아기 태동을 체크하고 자궁수축 정도를 파악하고 내진까지 한 결과 전혀 진행이 되지 않았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게 되었다. 적어도 자궁이 2-30%는 열렸다는 말을 들을 줄 알았는데 전혀 진행이 안됐다니. 내가 밤새도록 겪은 고통은 다 뭔가 싶었다. 꾀병인가? 내가 엄살이 이렇게 심하단 말인가? 하면서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그러면서 어차피 아기가 못 내려오는데 수술보다 웬만하면 자연분만을 하고 싶다는 이유로 괜한 고생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힘이 빠졌다. 진통이 강해도 이게 자연분만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있으면 참고 견뎌 볼 텐데 그런 것도 아니니 내가 겪고 있는 이 고통엔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졌다.

그렇지만 지금은 일요일 아침. 지금까지 나를 담당하시던 의사 선생님은 안계시고 당직 선생님만 계시는데 처음 뵙는 그 분께 수술 집도를 맡기자니 괜히 겁이 났다. 그래서 일단은 진통을 참아보고 월요일 아침에 담당 선생님께 수술을 받자고 하며 집에 돌아갔다. 하지만 집에 오니 더 강도가 세진, 그래서 도저히 견디기가 힘든 진통이 계속 되었고 생리같이 피가 왈칵 쏟아지기도 하면서 하루를 도저히 버틸 자신이 없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남편이 다시 분만실에 연락을 하고, 다행히 분만실 간호사 선생님께서 잘 도와주셔서 내 담당 의사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는데, 의사 선생님이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병원에 나와 수술 집도를 해주시겠다고 하여(한마*병원 권*현 선생님 정말 감사해요 ㅠ_ㅠ)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 긴급하게 수술 준비를 하였다.

수술 날짜를 잡고 차분하게 들어왔으면 수술을 준비하는 모든 과정이 겁나고 불편했을 텐데 진통만으로도 정신이 없는 상태로 오다보니 사람들이 흔히 말하던 굴욕 3종세트니 뭐니 하는 것들은 전혀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분만실 들어가자마자 항생제 반응 본다고 주사 맞고, 수액 꽂느라 주사 맞고, 제모하고, 소변 줄을 꽂는 것까지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이 상태에서 수술실에 들어가기까지 잠깐 기다린 것 같은데 그 때 정말 너무너무 아파서 숨을 헐떡거렸던 것 같다.

드디어 수술실 입성. 사실 남편도 같이 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정신없이 혼자 덜렁 들어가게 되었다. 또 수술실에 마취 없이 맨 정신으로 들어가 수술대에 스스로 올라가니 정말 기분이 이상했다. 수술실의 서늘한 공기, 초록색 천장과 벽지 그리고 수술대, 띠-띠- 하는 의학 드라마에서 자주 듣던 심박 수 체크하는 기계소리까지 무섭고 겁이 났다. 수술대에 올라 몸을 C자형으로 말아서 척추에 주사를 놓으니 진통이 심해서 그런지 주사는 전혀 아프지 않았으나 몸을 C자형으로 만드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그리고 하반신만 마취하고 정신은 멀쩡하다보니 혹시나 배를 가르는 아픔이 느껴지거나 피 냄새가 생생하게 느껴질까 너무 무서웠다. 그렇지만 다행히(?) 마취를 담당하신 선생님이 정말 수술대에 누워서도 느껴질 정도로 ‘나는 프로다’하는 포스를 풍기셔서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너무 긴장하는 게 느껴졌는지 살짝 안정제를 투약해주셔서 긴장이 금세 완화되는 느낌이었다. 안정제의 영향인지 마취 선생님께 “선생님이 너무 든든하게 느껴져요...”라는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기까지 했다.=_=;

수술이 진행되고 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오전 9시 58분 아기 태어났습니다-하는 간호사선생님의 말이 들릴 때의 감정은 뭐라고 해야 할까. 으앙-으앙-하고 아기가 우는데 그냥 아, 드디어 태어났구나. 태어날 때 안 울면 안 된다는데 울어서 다행이다. 나는 이 순간을 평생 기억하겠지. 하는 생각들이 순식간에 지나갔던 것 같다. 눈물이 날 것도 같았는데 울진 않았다. 간호사선생님이 바로 옆으로 아기를 데려와 보여주셨고 아기한테 한마디 하라고 하셔서 “안녕, 너도 나오느라 수고 많았어.”라고 했던 것 같다. 아기에게 한마디 하는 시간이 있는 줄 알았으면 세상에 처음 태어난 아기에게 멋진 말을 해줬을 텐데 아쉽다.

사실 아기를 꺼낼 때까지의 시간은 얼마 안 걸렸던 것 같고 그 뒤에 내 배를 다시 꿰매고 후속 조치를 취하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동안 아기는 옆에서 이런저런 검사를 하는 것 같았다. 근데 아기를 위해서인지 갑자기 누군가가 노래를 틀었는데, 그때 흘러나온 노래가 싹쓰리의 <다시 여기 바닷가>였다. 다행히(?) ‘헤이-호우-예예예 싹쓰리 인더 하우스- 커커커커커몬’쯤까지 나왔을 때 교수님이 뭘 이런 노래를 트냐고 하셔서 금방 엘가의 <사랑의 인사>로 노래가 바뀌었다. ㅋㅋㅋㅋㅋ
우리 버밍이의 생애 첫 노래가 유재석의 90년대 스타일의 랩이라니 ㅋㅋㅋ 그냥 완곡 기준으로 엘가의 <사랑의 인사>이었다고 기억하고 싶다.

내가 수술 과정에서 약간의 불편함을 느끼는 것 같아 보였는지 마취 선생님께서 내가 잠시 잠을 잘 수 있도록 약을 조절해주셔서 다시 눈을 뜨니 수술은 마무리가 되어가는 상황이었다. 수술이 끝나고 이동침대로 옮겨져서 밖에 나오니 엄마의 걱정스러운 얼굴이 가장 먼저 보였다. 수술실이 워낙 추웠는지 체온이 내려가 덜덜 떨면서 입원실로 이동을 했다. 입원실에 누워 있으니 기분이 멍해졌다. 어젯밤에 밤새도록 잠도 못자며 진통을 겪은 것과 마취제의 영향으로 그냥 몽롱한 상태가 이어졌다. 내가 아기를 낳은 것이 맞나. 버밍이가 세상에 태어난 것이 맞나 싶었다.

엄마아빠 남편은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도 하고 축하도 받고 하던데 정작 나는 정신도 없고 아프기도 아파서 오롯이 아기의 탄생의 기쁨만을 느낀 것은 아니었다. 뭔가 인생의 새로운 장이 열린 것 같다는 느낌이 희미하게 느껴졌을 뿐이었다. 심지어 첫날에는 움직일 수가 없어 면회도 가지 못해서 남편과 엄마가 찍어온 사진과 동영상을 보며 이 존재가 내 뱃속에 있던 아기가 맞나 싶었다. 나와 남편의 모습이 딱히 보이지 않는 초면의 존재. 어제까지도 내 뱃속에서 신나게 태동하던 그 녀석이 맞나 싶은 마음이 들었고 그 녀석이 세상에 나와 눈을 깜박깜박 뜨고 있는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어색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임신하는 동안에 내가 생각하지 않았던 과정으로 출산하게 되었으나, 작고 소중한 우리 아가가 무사히 세상에 나올 수 있어서 모든 것에 감사했다.

2020년 7월 19일 일요일 오전 9시 58분 3.64kg으로 태어난 나의 소중한 아가♥ 엄마아빠에게 와줘서 고마워. 세상에 온 것을 진심으로 환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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