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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이의 눈으로 보는 세상

산, 호수, 초원 그리고 별 _ 잘츠부르크 근교(고사우, 할슈타트)

by 썸머Summer 2023. 7. 9.

비엔나에서 이틀을 보낸 후, 비엔나에서 차를 렌트해서 잘츠부르크 지역으로 이동했다. 저번에 이탈리아 여행을 할 때 처음으로 외국에서 운전을 해보았는데 그 때 느꼈던 뭔가 감개무량한 기분이 또 느껴졌다. 네비게이션에서 '로마방면으로 5km 직진' 이런 말이 흘러 나올 때, '로마', '방면', '직진' 등 뭔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단어들이 합쳐져서 묘한 느낌을 주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이탈리아에서 운전할 때는 비교적 난이도가 낮다고 생각되는 고속도로(시내운전보다 차라리 그냥 길 따라 쭉 가는게..)와 토스카나 지역을 운전했는데도 정말 힘들었다. 일단 고속도로 치고 커브가 되게 많은 편이었고, 대형 트럭들도 많이 다녀서 운전하기가 까다로웠는데 무엇보다도 특히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리는 차들 때문에 내가 지금 시속 몇키로로 달리고 있는지 감이 오지 않을 정도였다. 정신차리고 보면 어느 순간 150정도를 밟고 있던 나.. 원래 난 규정 속도를 잘 지키는 안전제일 운전자라서 거의 2-3차선으로만 달렸지만 가끔 트럭을 앞서나가기 위해 1차선으로 들어갔었는데 내가 거의 130km로 달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빨리 안 간다고 뒤에서 깜박이를 켜서 공격하던 이탈리아 운전자는 정말 잊지 못할 것이다 .

어쨌든, 그러나 이탈리아와 다르게 오스트리아에서의 운전은 정말 너-무 편했다. 일단 도로 자체도 커브가 거의 없고 직선으로 쭉 뚫려있어서 약간 자유로 달리는 느낌이 났는데, 비엔나에서 잘츠부르크로는 화물차가 갈 일이 별로 없었는지 대형차량도 없고, 또 차들도 고속도로임에도 불구하고 평균 80-100km정도의 속도로 달렸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정말 정신없을 정도로 차선 변경을 하면서 앞지르기를 하던 것과는 다르게 다들 그냥 2-3차선에서 쭉 달려서 운전하기가 정말 편했다. 외국에서 차를 운전하는 것의 레벨을 매긴다면 여긴 초보자 레벨일 듯. (참고로 영국에서의 운전은...우핸들과 로터리(라운드어밧) 운전 때문에 한국인에게는 꽤 고난도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참,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게 그냥 그렇게 평화롭게 잘 운전하고 있었는데 고속도로에서 작은 돌이 튀어 우리 자동차 전면 유리에 튀었고, 정말 작은 돌이었겠지만 속도 때문인지 자동차 전면 유리에 엄청난 금을 내어서, 아니 금보다는 약간 박살에 가깝게 나서 나를 멘붕 상태에 빠지게 만들었다. 가장 높은 단계의 보험에는 들었었지만 진짜 이렇게 유리창 전면이 거의 박살난 것까지 커버가 될까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풀 커버가 되었다. 정말 외국에서 렌트할 때는 아깝더라도 무조건 풀커버 보험을 가입해야 한다고 조언해준 많은 블로거님들에게 감사한 순간이었고 그동안 보험 가입하며 아깝다고 생각했던 돈들을 다 보상 받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며 비엔나에서 차로 약 3시간 정도를 달려서 잘츠부르크 근교에 도착했다. 우리가 가려고 한 곳은 고사우라는 곳과 할슈타트. 할슈타트가 한국인에게는 가장 알려진 호수마을인데 관광객이 너무 많아 내가 기대하는 그런 호젓한 분위기를 느끼기가 힘들다고 해서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고사우로 향했다. (원래는 꽃할배를 보고 꽂힌 슈덴베르크 산악열차를 타고 싶었지만 9월까지밖에 운행을 하지 않아 타지 못해서 고사우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잠깐의 하이킹을 하기로 했다. )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되어서 늦은 오후에 올라갔지만 그래도 하늘은 여전히 파랗고 늦가을임에도 불구하고 푸르게 펼쳐진 초원에 굉장히 자유로운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파란 하늘 파란 하늘 꿈이 드리운 푸른 언덕에 아기 염소 여럿이 풀을 뜯고 놀아요~ 의 아기 염소처럼 그냥 막 이곳저곳 뛰어다녔는데 무엇인지 설명하기 어려운 해방감이 느껴졌다. 

 

고사우나 할슈타트 모두 부드러운 파스텔로 그린 그림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아름다웠지만,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밤하늘에 떠 있던 수많은 별이었다.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 나온 것처럼 내가 기억하는 것이 전부 사실이 아닐 수도 있고, 내가 변형된 혹은 왜곡된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 일수도 있지만 내게는 소중한 기억이 하나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모든 학교가 떠난다는 수련회를 갔고 으레 하는 촛불 점화 및 부모님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그런데 그 시간이 끝난 후 촛불을 끄고 바라 본 밤하늘이 내겐 잊을 수 없는 기억 중 하나이다. 진짜 별이 머리 위로 쏟아질 것 같다는 문장을 글자 그대로 이해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 그 기억을 재현하고 싶어서 일부러 양평에 위치한 천문대에 방문하여 밤 11시에 진행하는 별 관측 행사에도 참여해보았지만 그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도 보이던 서울 쪽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 공해 때문에 희미한 별밖에 보지 못했다. 그래서 사막 같은 곳에서 쏟아지는 별빛을 맞는 것이 내 인생의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예상치 못하게 그때 기억 속의 그 별빛을 마주친 것이다. 정말 고요하고 적막한 세상 속에 오직 별들만 빛나고 있었다.

덕분에 어릴 적 연습하던 한글 타자 덕분에 몇 번씩이나 읽은 알퐁스 도데의 <별> 중 한 구절이 떠올랐다.

만약에 당신이 별들이 아름답게 빛나는 밤을 지새운 적이 있다면

우리가 잠을 자야 하는 것으로 아는 그 시간에

신비로운 또 다른 세계가 고독과 고요 속에서 깨어나는 것을 아실 겁니다.

 

더 좋았던 것은 별이 머리 위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넓은 호수 덕분인지 하늘이 산에 가려지지 않아 그냥 눈 앞에, 고개를 들지 않아도 별이 내 앞에 존재했다는 것이다. 내가 가진 카메라로는 밤하늘의 별빛을 담지 못해서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했지만 눈 앞에서 아름답게 빛나던 그 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고1 때의 아름다웠던 별들의 추억과 더불어 고요함 속에서 깨어난 신비한 세계가 내 마음 속 한켠에 오래 자리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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