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육아-ing

1. 애기랑 24 시간 같이 있다 보니 생각이 많으면서도 생각이 없어진다. 특히 펜으로든 휴대폰으로는 뭔가를 기록하기가 불편한 상황에서 머릿속이 그냥 하얘지고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말로만 듣던 퇴근이 없는 삶이란 이런 건가 싶다. 새벽이 오는 것이 무섭고 아침이 오는 것도 무섭다. 오늘은 편하게 보낼 수 있을까 오늘 밤엔 잠을 자줄까 하는 걱정들이 떠나지 않는다.
2. 육아는 정말 고강도의 노동이다. 심지어 나는 친정에서 부모님의 도움을 받는 데도 불구하고 육체적으로 그냥 너무 힘들다. 자꾸만 아기를 부모님께 맡기고 싶다. 그치만 부모님도 아직 일을 하시는 분들이라 아기를 귀여워 하시면서도 아기 때문에 지쳐 주무시는 모습에 마음이 안 좋다.
3. 가장 힘든 것은 과연 언제까지 이런 생활이 계속 될 것인가 에 대한 명확한 답을 모르겠다는 것이다. 백일의 기적 이라고는 하지만 말 그대로 기적이라 나한테 안 올 수도 있고 또 백일을 지난다고 해서 아기가 순식간에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수면교육 병치레 이유식 등등 깨야 할 미션들이 너무 많은데 잘 헤쳐 나갈 수 있을까 싶은 마음뿐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마라톤 경주에 얼떨결에 참가한 기분. 그래서 어느 목표지점을 향해 달려간다는 것이 아니라 매순간, 매일을 소중히 여기고 오늘은 돌아오지 않을 아기와 나의 하루라 생각하자고 마음먹어도 그게 쉽지가 않다.
4. 출산하고 초반에 느낀 막막함이 최근 좀 덜했는데,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아기를 보니 어제와 그제와 또 저번 주와 똑같은 일을 반복해야하는 하루가 시작됐다는 생각에 또 살짝 막막해졌다. 아가 너무 귀엽고 요 알 감자 요 강아지똥 같은 녀석이 정말 사랑스러운데도 오늘은 어제처럼 낮잠은 잘 잘까? 오늘은 무사히 넘어갈까하는 불안감이 이상하게 해일같이 덮쳐오는 오늘.
5. 자다가 깨서 우는 아가를 꼭 껴안고 엉덩이를 토닥여주면 금세 울음을 그치고 나에게 꼭 안긴 채 편안하게 다시 잠이 든다. 마치 내 품안이 최고의 안식처인 것처럼. 살아가며 이 아이가 눈물을 흘릴 날이 있겠지만 그때마다 이렇게 마음껏 안심할 수 있는 따뜻한 품을 내어주는 부모가 되고 싶다.
6. 어제는 하루 종일 아기가 칭얼대니 나도 기운이 빠지고 손목도 너무 아려오고 힘들어서 또 그냥 울었다. 사실 주변에서 너무 많이 도와주고 이건 힘든 축에도 못 낄 것 같지만, 워낙 편하게 살아왔는지 그냥 힘들다고 울었다. 특히 나는 샤워하고 나와서 몸에 로션을 바르고 머리를 말리고 하는 그 시간을 길게 즐기는 편인데 애기가 울어서 몸에 물도 제대로 못 닦고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채로 아가를 달래주고 있을 때 그냥 왈칵 눈물이 났다. 너무 짜증나 잉잉잉 하면서. 근데 오늘은 또 순하게 혼자 놀고 자고 하니 이렇게나 기분이 좋다. 우리 아기에겐 원더윅스는 잘 맞지 않는 단어인 것 같다. 원더데이(...?)라고 해야하나. 하루하루 아기의 컨디션에 따라 내 감정도 널뛰듯이 일희일비한다.
7. 50일쯤 되어서 수면교육 비슷한 것을 하려고 했다. 낮잠 재울 때 최대한 안아주기 보다는 누워서 자도록 하기. 엄마도 편하지만 아가도 스스로 잠이 들어 누워서 자면 수면의 질도 더 높아진다고 해서 나름 노력해서 교육하고 있는데 주변에서는 왜 그렇게 애를 울리냐고 뭐라고 하니 너무 속상했다. 나도 대충 아기띠로 아기 안아서 재우는 것이 더 편하다고. 근데 더 잘하려고 노력하는 건데 무슨 나쁜 엄마인 것처럼 얘기하니까 진짜 내가 50일도 안된 아기를 데리고 뭘 하고 있나 싶기도 하고.. 수면교육에서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수면교육이 아이에게 필요하다는 엄마의 신념이라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8. 육아의 힘든 점 오조오억개 있지만 당장 몇 분뒤도 예상하지 못하는 점 또한 힘들다. 수유텀이나 큰 일과표는 있지만 당장 아가의 컨디션에 따라 하루가 완전 달라지니... 오늘은 뭘 해야지~ 이따 4시엔 뭐해야지~ 이런 일과 자체가 없음. 어디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주위를 구경하면서 천천히 걸어가자고. 아기는 무럭무럭 자라고 나의 3n살 9월과 아가의 0살 9월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되뇌지만 역시 육체의 피로가 약한 멘탈을 만드는 것 같다.
9. 나의 외모 최저점을 찍고 있다. 임신 중 불어난 살은 아기 무게가 빠지고 어느 정도는 빠졌지만 임신 전 무게로는 돌아가지 않는다.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데 집에 계속 있고 육아 노동에 스트레스까지 받다보니 달달한 것이 자꾸 땡겨서 살이 빠지지가 않는다. 근데 살도 살인데 출산 후 피부 탄력이 사라졌다. 임신 중에는 더 살이 쪘어도 두 턱이 되진 않았는데 출산 후에 턱이 두 개가 됐다. 원래도 무턱이라 턱선이 없어서 외모 콤플렉스 중의 하나였는데 모유 수유 때문에 거북목도 더 심해지고 턱선도 사라져서 거울을 볼 때마다 미칠 것 같다. ㅠㅠ 얼른 경락마사지를 받거나 운동을 통해서 이걸 해결해야 할텐데.. 그거랑 머리! 파마를 2018년에 하고는 영국에 갔다 오느라 그 뒤로 머리에 아무런 화학적 약품(ㅋㅋ)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정말 자연인 그 자체의 머리가 되어버렸다. 심지어 머리숱이 꽤 많은 나인데도 앞쪽에 머리가 빠졌는지 빈 두피가 보여!! ㅠㅠ 코로나만 아니면 잠깐 미용실이라도 다녀올 텐데. 그래서 요새 거울 보는 것이 정말 싫다. 맨날 잠옷 차림에 머리는 질끈 묶고 퉁퉁 부어있는 내 모습.ㅜㅜ 그렇지만 그래도 이 모습도 내 인생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조금이나마 아가랑 같이 사진을 찍어 남겨두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