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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___Diary

35주차 나의 생각들

by 썸머Summer 2020. 6. 11.

 

1. 35주차 입성 

35주에 입성했다. 진짜 배가 하루가 다르게 불러온다. 한국에 입국할 때만해도 임산부인 것이 티가 안 나서 이런저런 도움을 못 청할까봐 걱정했었는데 지금은 누가 어디서 봐도 완전한 만삭의 몸이다. 속 방귀 같기도 하고 거품 같기도 하던 태동은 이제 눈으로도 잘 보일 정도로 배가 이리저리 요동치는 태동으로 바뀌었다. 점점 한 자세로 있기가 불편하다. 서 있으면 다리가 퉁퉁 붓고 아프고 앉아있을 땐 다리를 쩍 벌리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늘을 바라보는 자세로 눕는 것은 이미 몇 달 전부터 숨쉬기가 어려워 포기했으나 오른쪽으로 누워도 왼쪽으로 누워도 불편함은 가시지가 않는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잠을 설칠 정도는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잠까지 못 잔다면 너무 힘들 것 같다. 
몸은 무거워지고 가만히만 있어도 숨이 차서 현기증이 나는 것 같은데 날씨까지 점점 더워지니 정말 힘들긴 하다. 그나마 지금은 더운 집을 피해 이렇게 시원한 카페에 앉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숨을 돌릴 수 있다지만 7월에 아가가 태어나면 긴팔에 양말을 신고 차가운 것도 먹으면 안 된다고 하던데... 얼마나 힘들지 벌써부터 아찔해진다. 

그래도 그나마 이렇게 힘들다고 칭얼거릴 수 있는 것도 전부 우리 밍이가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주고 있는 덕분이다. 이번 주 정기 검진 날엔 평소보다 환자도 많고 의사 선생님이 무슨 이유인지 급히 자리를 비우기까지 해서 약 1시간 정도를 대기했다가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1시간의 기다림 그러나 진료는 약 5분? 초음파로 머리둘레, 배 둘레, 다리길이, 심장박동을 측정하고 대략의 무게를 쟀는데 전부 주수에 맞게 잘 성장하고 있어서 의사 선생님도 딱히 별로 덧붙일 말이 없으신 것 같았다. 엄마의 욕심으로는 더 보고 싶고 발가락 손가락 하나하나 다 알려주고 보여줬으면 좋겠지만 아기도 불편할 수 있고 오히려 모든 수치가 정상이라 진료는 짧을수록 좋은 것이겠지. 

단지 내 태반이 앞쪽에 형성되어 있고 밍이가 태반에 딱 붙어 있을 때가 많아서 지금까지 제대로 얼굴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 얼굴은 7월에 널 만났을 때 직접 보라는 뜻이겠지? 수능이나 큰 시험을 앞두면 꼭 이런 마지막 달쯤에는 얼른 시간이 지나가서 확 시험을 쳐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출산과 육아에 대한 두려움이 크지만 그래도 이제는 그냥 얼른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고 싶은 기분이다. 밍이를 얼른 만나고 싶기도 하고. 조금만 더 기다릴게. 그때까지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렴 :)

 

2. Non taken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 새로 생긴 샐러드 가게에 들르려고 상가가 즐비한 골목에 들어섰다. 가게가 정확히 어떤 상가에 있는 건지 내비게이션으로는 잘 분간이 안가서 비상깜빡이를 켜고 조금 느린 속도로 운전을 하며 살펴보려는 찰나였다. 순간 뒤에서 빵-! 하는 경적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살짝 옆으로 비껴 세웠더니 경적을 울린 그 차의 운전석에 탄 아저씨가 인상을 일그러트리며 우리에게 욕을 하며 지나갔다. 며칠 전 일인데도 그 아저씨의 표정이 잊히지가 않는다. 그 적나라한 적의, 적대감, 헤이트 감정. 부끄럽지도 않은지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그대로 전시하는 그 뻔뻔함. 그 사람에게 통행의 방해를 준 것이 정말 10초도 되지 않았는데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린 그 분노.

그런 날것의 적대감을 만나면 너무 당황스럽다. 그리고 늘 생각하게 된다. 내가 만약 우락부락하거나 싸움을 잘하게 생긴 남자였다면 아저씨가 그렇게까지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전시할 수 있었을까? 하다못해 내가 타고 있는 차가 엄청나게 비싼 슈퍼카였다면 내 차 옆을 그렇게 과격하게 지나갈 수 있었을까? 강약약강은 본능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그 노골적인 치사스러움에 더 화가 난다. (최근에 나를 분노케 한 사건, 서울역에서 지나가던 여자를 폭행한 남자의 사건이 떠오르며. 제발 ‘묻지마’라는 말 좀 기사 제목에 붙이지 말고, 심신미약이라는 가해자의 개소리는 듣지도 옮기지도 마) 

가장 우선적이고 근원적으로는 그 아저씨가 환골탈태해야겠지만 왠지 그것보단 그 아저씨가 관짝에 묻힐 날이 더 빠를 것 같고, 그런 적대감을 내가 받지 않으려면 어떡해야할까. 미드를 보다보면 “I’m sorry, No offense.” 하면 대답으로 “Non taken”이라고 하던데. offensive한지 아닌지의 여부를 떠나 Non taken하고 싶은데 그러기가 쉽지가 않다. 나도 송곳니를 드러내고 그 아저씨와 똑같이 으르렁댈까? ‘운전 똑바로 안 해?!’ 하면 나도 ‘뭐야 이 미친 새끼,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하고 같이 욕을 해주면 기분은 좀 풀리려나. 근데 그런 사람이랑 같은 레벨이 되고 싶지는 않은데. 

예전에 <싸움의 기술>이라는 글에서도 썼듯이 내겐 이런 문제가 너무 어렵다. 내가 멘탈은 약하면서 최대한 다른 사람에게 예의를 지키며 살아가려고 하다 보니 내 상식의 선을 벗어난 무례함을 마주칠 때 쉽게 넘기지 못하고 남들보다 더 당황해하는 것 같다. 지금까지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수많은 무례함을 만날 텐데(심지어 이렇게 지나가는 아저씨가 아니라 직장에서 더욱 지독하게 얽힐 그런 무례함까지) 이 세상의 평균을 너무 올려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본적으로 모든 인간은 무례하고 치사하고 강약약강이니까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사람에게 더욱 고마워하고 상대의 배려와 친절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마음을 가져야할 것 같다. 

 

3. 우리는 왜 살아가는가 

정말 근원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이다. 삶과 죽음, 평생을 생각하고 연구해도 그 해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 어떤 이는 논리와 이성에 기대어 설명하려고도 하고 어떤 이는 신께 그 해답을 찾으려고도 하는 문제. 최근 나에게는 새로운 생명이 내 뱃속에 들어있고 이 아이가 곧 세상에 태어난다는 일과 동시에 요즘 조부모님이 편찮으셔서 엄마 아빠를 비롯해 친척들이 어려운 시간을 겪고 있는 일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인간의 삶, 생애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인간은 왜,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걸까? 내 몸을 빌려 이 세상에 던져지게 될 밍이라는 존재에 대한 부담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어떤 밤에는 해일처럼 밀려오는 근원적이고 필연적인 생의 고독감에 엉엉 울며 잠에서 깨어나기도 했다. 

인간은 무엇이든 이해 가능한 범주로 해석하길 원하고 가치, 의미, 서사를 부여하길 원하는데 삶은 그러지 않으니 괴로울 수밖에. 종교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불교의 궁극적 목표는 결국 해탈을 통해 고통스러운 삶의 고리, 즉 윤회를 끊어내는 것 아닌가? 기독교의 교리도 구원을 통해 결국엔 천국에 가고자 하는 것일텐데 두 종교의 교리가 인간의 삶이 그만큼 힘들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뭔가 답답한 마음에 책을 한 권 샀다. 사회학자 김찬호씨가 쓴 <생애의 발견>이라는 책이다. 어렵고 심층적인 철학 책은 지금 나의 컨디션으로는 도저히 못 읽을 것 같아 대신 ‘한국인의 삶’에 대해 전 생애에 걸쳐 비교적 쉽고 가볍게 저술하였고 또 인문학자가 아닌 사회학자의 시선으로 풀어낸 삶의 이야기는 어떨지 궁금해서 구매했다.

아무래도 ‘한국인의 삶’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내가 지나온 세대의 이야기 혹은 내 세대의 이야기는 사회학자의 정연한 언어를 통해 공감도 하고 조금 먼 시각으로 관조할 수도 있었다. 아직 다 읽지는 못해서 지금은 ‘어머니의 삶’, ‘아버지의 삶’을 다룬 부분을 읽고 있는데 이 부분은 워낙 저자가 나와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읽기가 좀 힘들다. 어머니에 대해 언급하며 아이를 수동적으로 만드는 극성스러운 존재라는 프레임도 지겹고 그냥 웬만하면 남자 작가들이 모성에 대해 글을 쓸 때 ‘자궁’에 대한 언급은 안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반면 아버지에 대한 장에서는 넘쳐흐르는 자기 연민적인 시각이 거북스러울 정도다. 이제 중년여성, 중년남성 노년에 대한 이야기가 남았는데 그 부분은 어떨지 궁금하다. 

사실 삶과 죽음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도 사실 아무 걱정 없이 편안히 출산 준비에만 전념할 수 있는 나의 사치스러운 상황에서 비롯된 것 같기도 하고, 단지 영원히 그 목적과 방향을 알 수 없을 이 세상 속에 내 욕심으로 곧 밍이를 내던질 예정이니 나는 그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다해야 할 뿐이다.  

 

4. 뱃사장- 

'뱃사장'이라는 말은 우리 엄마가 점점 불러오는 나의 배를 놀릴 때 사용하는 단어다. 생전 처음 들어본 단어라 엄마한테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니 배가 나온 사장님이라는 뜻으로 뭔가 전형적인 20세기의 배불뚝이 자본가의 이미지를 가리켜 '뱃사장'이라고 하는 것 같다. 

그냥 나는 뭔가 이 단어가 웃기다. 임산부의 몸을 자본주의 돼지 이미지(ㅋㅋㅋ)에 빗댄 그 발상이 재미있다. 빗댈 만한 것이 많았을 텐데 하필 사장이라니. 묘하게 '백사장'과 비슷한 발음에 배가 나온 사장을 줄여서 '뱃사장'이라고 하는 단어의 조합도 재밌다. 내가 배가 불러서 뒤뚱뒤뚱 걸어 다니면 엄마가'아이고~뱃사장~'하고 놀리는데 <응답하라 1988>에서 덕선이와 정환이 아버지가 했던 '아이고 김사장~아이고 성사장~ 반갑구만 반가워요'하는 그 꽁트가 생각나기도 하고 ㅋㅋㅋ 

근데 이 말이 엄마만 쓰는 말인 줄 알았는데 어제 목욕탕에서 어떤 할머니께서 나보고 '뱃사장'이라고 하셨다. 알고보면 이 말은 우리 지역의 사투리였나..! 암튼 요즘 나를 스스로 혹은 타인이 지칭하는 새로운 말들이 많은데 (예를 들어 임산부, 산모, 어머님(만삭사진 촬영할 때), 00맘(임신출산 카페에서) 등) 그중에선 뱃사장이 왠지 젤 맘에 든다. 마땅히 지칭할 말이 없을 때 누구든지 '사장님'이라고 지칭하는 한국사회에 익숙해져서인가. 이럴 때라도 사장님 해봐야지 언제 또 해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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